‘응사’와 아름다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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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전성인 칼럼

‘응사’와 아름다운 시절

by eKHonomy 2013. 12. 4.

“응사” 열풍이 한창이다. 몇 명의 선남선녀들이 모여서 중장년층의 기억 저편에 버려졌던 조각들을 이토록 뭉클하게 그려낼 줄은 몰랐다. 드라마의 성공에 대한 연극영화적 분석은 당연히 경제학을 전공한 필자의 몫이 아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의 시대상, 특히 그중에서도 경제 상황에 대한 회고에 대해서는 필자도 한 마디 거들 자격이 있다고 본다.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결정적으로 변모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응사”의 배경이 된 90년대 중반은 일종의 세기말에 해당한다. 어두운 시대가 도래하기 전 달콤한 샴페인의 마지막 한 방울을 음미하던 시절. 그래서 이 시기는 지금 되돌아보면 “아름다운 시절”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우선 부동산 불패 신화가 있었다. 집은 그 시절 가장 중요한 재테크 수단이었다. 2억원대였던 강남의 30평형대 아파트는 그 후 10억원을 훌쩍 넘게 된다. 물론 이것은 병리적인 현상이기는 했으나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당연한” 사건이었다. 지금은 정부가 초저금리로 돈을 빌려 줄 테니 제발 집을 사달라고 애원해도 집값이 꿈적하지 않는다.


물가는 오르는 것이 상식이었다. 지금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지 몰라도, 물가상승률은 10%를 넘나들었다. 언론이 물가에 관한 기사를 취급할 때면 언제나 “서민은 뛰는 물가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다. 지금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은 1%도 되지 않을 때가 부지기수다.


기업들은 언제나 돈이 부족했다. 금융시장은 “만성적인 초과수요”에 시달렸고 금융기관은 어떻게 하면 정부의 총통화 통제목표를 우회해서 기업에 대출을 해 줄 수 있는지를 고민했었다. 지금은 돈이 남아 돈다. 원금 보장이 안되는 CMA 금리가 3% 이하로 떨어진 지도 제법 되었다.


노동 시장의 그 당시 핵심 화두는 “청년 실업”이 아니라 “산업 평화의 정착”이었다. 매년 단체 협상을 둘러싼 노사간의 줄다리기가 팽팽했고, 상당한 규모의 파업도 있었다. 명목임금 증가율을 생산성 향상 범위 이내로 통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였다.


요새는 명목임금이 올라본 기억이 별로 없다. 실질임금은 이명박 정부 이래 이론의 여지없이 하락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총파업이 사라진 곳에는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 정책현안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 문제가 그대로 있다. 90년대 중반에 청년 실업은 “취업 빙하기를 겪고 있는 일본 청년들”의 문제로만 등장했었다.


무엇보다 그때는 희망이 있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 살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 그래서 응사 속에서, 그리고 실제로도 그 당시 사람들은 사랑하고, 결혼하고 때로는 용감하게 “늦둥이”도 낳았다. 그러나 지금 한 자녀는커녕 취업, 결혼, 자녀를 몽땅 포기한 “3포 세대”가 응사의 젊은이들을 대신하고 있다. 12시간을 넘게 일해서 200만원 내외의 돈을 벌어 월세와 전화료 내고 나면 별것이 없는 세대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아침마다 큰 식탁에서 산더미 같은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 아니라, 아침은 거르고 저녁식사는 혼자서 때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1인 가구의 비중은 전체 가구수의 4분의 1에 달하고 증가 추세다.


응답하라 1994 스틸컷 사진제공: CJ E&M


그러나 안 변한 것도 있고 되살아나는 것도 있다. 재벌기업 위주, 수출지상주의적 성장정책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수출이 경제에 미치는 순기능이 줄어들고 낙수효과가 환상으로 끝난 지금에도 재벌 대기업을 지원하고 환율을 저평가하고 세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그대로다. 그 과정에서 국내 소비자는 희생되고 있다.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 때 우리나라 국민들이 때아닌 “직구” 소동을 벌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토록 선전하던 한·미 FTA의 소비자 후생 증대 효과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젊은이들에게 꿈을 주고 직장을 주고 그들이 장기적인 인생 계획을 안정적으로 수립할 수 있도록 경제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투자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20년 뒤, <응답하라 2013>이라는 드라마가 또다시 “아름다운 시절”을 묘사하게 되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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