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어느 가을이던가, 수업도 작파하고 바둑에 미쳐 지낼 무렵의 일이다. 친구 하숙집에서 법대 신입생을 만나 두 시간이 넘는 혈투 끝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누웠는데 잠은 오지 않고 천장에는 희고 검은 돌만 아른거리기를 몇 시간. 마침내 내가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다음 날 학교 바둑실에 죽치고 앉았다가 만난 법대생에게 회심의 복기를 해보였더니, 이 녀석, 너무도 쿨하게 “형이 이긴 바둑 맞네요”라는 한 마디만 던지고 총총히 사라짐으로써 지독한 불면의 밤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총력전이었던 탓일까? 유독 뼈아픈 회한과 힐링의 복기가 사방에 차고도 넘친다. 내가 읽은 것 중에 압권은 아무리 그래도 첫사랑을 잃었을 때만큼이야 할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리라는 어느 진보적 경제학자의 칼럼이다. “지금 분석하는 자 어리석다”라는 어느 페친(페이스북 친구)의 잠언 같은 문장 또한 그에 뒤지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시구처럼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라고 넋두리하는 것만으로 한 세월 버텨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회과학의 숙명은 어쩔 수 없이 분석과 진단을 시도하도록 만든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당선사례 현수막과 문재인 후보의 낙선사례 현수막 (출처: 경향DB)
미국의 노동자 출신 철학자인 에릭 호퍼는 <맹신자들>에서 직관적인 깨달음을 툭툭 던지듯 제시한다. 먹고 사는 것이 아슬아슬한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매우 구체적이며, ‘인생에 의미와 존엄성을 부여하며 삶의 용기를 줄 초개인적 목표’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최상층 사람들은 뜻밖에도 자신들의 성공이 능력 못지 않게 운의 결과라고 생각하며, 그 운을 지켜줄 구조가 온전하게 유지되기를 바란다. 사정이 이러하니 구조의 변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언론자유나 민주주의, 이성의 승리 등속에 관심을 갖는 것은 실제로는 적당히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다.
최근 번역된 <캐비어 좌파의 역사>의 지은이 또한 ‘캐비어 좌파’(우리 식으로 번안하면 ‘강남좌파’쯤 될 것이다)라는 말에 실린 비아냥을 넘어, 그들이 실제로 사회 진보를 이뤄내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점에서 <맹신자들>의 분석과도 맥을 같이 하는 측면이 있다. 그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에 캐비어 좌파들이 진보적 개혁 정신을 잃고 중도로 움직인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고 주장한다. 무엇에 대한 실수란 말인가? 권력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더욱 견디기 어려운 체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새 정권에 대해 그를 반대했던 편에서, 이를테면 아버지가 가졌었다고 주장하는 “복지국가의 꿈”을 향해 딸이 조금이라도 움직여주기를 바란다는 식의 실낱같은 의지적 낙관의 메시지도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에릭 호퍼의 말이 한국사회에도 들어맞는 것이라면 양극화의 진전은 보수세력에게 대의명분은 잃게 만들겠으나 정치공학적으로는 오히려 이득이 된다. 5년 만 지나면 이제야말로 박정희 신화는 깨질 것이라는 주장이 예측이라기보다는 희망으로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상대편’의 실패를 기원하거나 성공을 저주하는 차원이 아니라 양극화라는 경제적 토대와 그 정치적 표현 사이의 다이내믹한 상호관계의 문제일 것이다. 경제적 민주주의의 후퇴와 정치적 민주주의의 후퇴가 상호증폭된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새로운 ‘스타’를 잘 키워 다음 판에 이기면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어느 시점에서 이렇게 행동했더라면 사랑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거나, 이 한 수를 찾았더라면 바둑을 이겼을 거라는 식의 분석은 무망하다. 그러나 어차피 정치가 ‘말’과 ‘밥’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나가는 게임이라면, 지금부터 몇 년 동안은 그 균형이 어떻게 회복되는지 또는 깨지는지를 결정짓는 과정일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근본적으로 되어야 할 것은 분명하나, 그것이 반드시 현실 정치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바로 보수가 지닌 딜레마의 거울이미지인 진보의 딜레마이다.
'경제와 세상 > 류동민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제와 세상]졸 움직이기와 거래비용 (0) | 2013.03.06 |
---|---|
[경제와 세상]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0) | 2013.02.06 |
[경제와 세상]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경제학 (0) | 2012.12.12 |
[경제와 세상]말하는 이와 듣는 이 (0) | 2012.11.14 |
[경제와 세상]경제민주화, 배가 불렀나? (0) | 2012.10.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