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기후변화와 자본주의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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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경제직필]기후변화와 자본주의 5.0

by eKHonomy 2019. 10. 17.

모든 생물에는 주변 환경과의 균형을 추구하는 본능이 각인되었다고 믿는다. 이런 ‘균형’본능을 상실하여 무절제할 때 멸종하거나 재앙을 겪는다. 인간에게도 이런 본능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동서고금의 윤리와 사회규범들은 탐욕을 경계하고 절제와 절약을 장려한다. 가끔 내 자신에게서도 균형본능을 발견한다. 간편 음식점에서 내가 먹은 것보다 더 많은 쓰레기를 버릴 때, 가까이서도 생산되지만 수천, 수만리 먼 거리를 날아온 물건을 소비할 때, 아직도 멀쩡하지만 오래된 가구를 새 가구로 교체할 때, 작은 부품 하나만 갈아 끼우면 쓸 수 있는 전자제품을 폐기할 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다 사라진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팽창으로 균형본능이 더 이상 인간의 행동을 제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본능을 버리고 무한한 물질적 욕망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선(善)이 돼버렸다. 자본가의 돈 욕심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은 하찮은 것이 되고 시장가격이 사회적 서열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선진국 국민들은 옛날 극소수의 귀족들만 향유했던 것 이상의 물질적 풍족을 누린다. 이미 넘쳐나는 소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더 풍족하게 하는 것이 인류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지만 잘사는 나라와 부자들은 자본의 질서에 따라 돈 되는 데 투자하고 또 투자하고, 양적 경제성장 경쟁의 무한궤도를 굴러간다. 아직도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은 이런 풍요의 혜택은커녕 빈곤과 결핍 속에 살아간다. 이들을 국가라는 장벽으로 가두고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시장만 거대하게 돌아간다. 더 가치 있는 과학 발전과 인간 개발의 길이 있어도 돈 되는 길로만 자본이 흐를 뿐, 그 길이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치 않다.


이렇게 살면 안된다. 멸종을 피하려면 균형본능을 회복하라. 기후변화가 알려주는 답이다. 산업혁명 이후 유래 없이 대규모로 태웠던 화석연료가 문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200년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많은 양의 석탄과 석유를 땅속에서 캐내고 불태워야 유지되는 경제활동에도 불구하고 이를 걱정하는 균형본능은 작동하지 않았다. 20세기 중엽 과학자들이 의심하면서부터 문제가 감지되었고 그로부터 50여년 더 흘러 비로소 교토의정서라는 최초 실행 안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200년도 더 지난 산업혁명기부터 방출된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축적되어 지구온난화를 야기하니 그렇게 축적되는 총량을 제한해야 한다. 지금 국제사회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합리적 방안은 2050년까지 경제활동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0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적이 되려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50% 이상 감축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목표에 미달하는 파리협약의 감축목표조차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후변화를 음모론으로 폄훼하거나 국가 이기주의적 신념을 퍼트리는 미국 정부와 보수주의자들의 책임이 크다.


다수의 못사는 나라들은 경제개발을 위해 더 많은 화석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가장 많은 화석에너지를 소비하는 잘사는 나라들은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해상충의 문제가 해결되려면 가난한 후진국이 화석에너지 없이도 발전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선진국이 더 이상 양적 경제성장을 추구하기보다는 깨끗한 에너지 개발과 온실가스 저감 기술에 투자하고 그 기술을 확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선진국은 ‘절약과 절제’를 위한 기술개발에 투자하여 손실을 보전할 수 있게 하고 후진국은 그 기술의 확산과 경제개발로 발전의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지금의 자본주의로는 어렵다. 


절약과 절제의 기술혁신에 투자하도록 하려면 남용과 무절제의 비용이 훨씬 더 커져야 하고 지구 곳곳의 자원을 헐값에 고갈시키는 경제활동이 어려워져야 하며, 열대우림, 생물 다양성 등 지구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보존은 충분히 보상되어야 한다. 지구 사회의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노력이 초국가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후진국 발전의 기회가 공평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란 기술변화보다 우리에게 더 시급한 것은 이러한 지구적 자원관리체계 그리고 환경과의 균형이 존중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적 소유와 공유의 권리 획정, 공동자원에 대한 권리와 책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라는 재앙이 이런 역사적 전환의 기회다. 온실가스 배출의 80%를 차지하는 G20 국가들, 특히 역사적 책임이 지대한 유럽과 북미 선진국들이 나서야만 한다. 그렇게 되려면 국민 개개인의 각성, 실천, 정치참여가 필요하다. 소비하는 기계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율적 의지로 소비자 주권을 행사하는 개개인이 변혁의 주체이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분배정의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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