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주택 관리·지원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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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

공공임대주택 관리·지원 시급하다

by eKHonomy 2018. 12. 20.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어느 정부에서나 가장 인기 있는 부동산 공약이었다. 1989년 노태우 정부의 200만호 주택건설계획에 포함됐던 영구임대주택 25만호가 첫 출발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후반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20만호 영구임대주택 공약을 100만호 국민임대주택으로 변경해서 참여정부에 물려주었다. 문재인 정부는 연간 17만호의 공적 임대주택을 공약으로 내걸고 주거복지로드맵으로 추진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공공임대주택은 진보적 주택정책의 상징이었다. 1880년에 설립된 영국의 사회주의자 지식인의 모임인 페이비언 소사이어티는 주택을 비롯한 학교와 의료시설의 국공유화를 통해 언젠가는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과거 진보정당은 전체 주택재고의 30% 공급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민주당도 한때는 20%를 내걸었다.

 

공공임대주택은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주거복지 수단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여전히 공공임대주택은 그 역할을 잘하고 있을까? 지난 주말 내가 주관한 작은 정책토론회에서 이 문제를 되짚어 봤다.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는 어떻게 책정하는 게 가장 바람직할까? 공공임대주택에서 입주민들 간 공동체를 활성화하려면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공공임대주택에서 어떤 복지 서비스 지원이 가능할까?

 

공공임대주택이 주거복지 수단이라면 입주민이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임대료를 책정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같은 소득을 가졌더라도 어떤 임대주택에 입주하는가에 따라 임대료가 최고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지역 내에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통합하고 어느 단지에 거주하든 소득수준에 따라 임대료가 결정돼야 한다. 정부가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제시한 임대주택 유형통합과 입주자 대기자 리스트를 통해 달성해야 할 임대주택 관리의 목표이다. 그러자면 지자체가 주거복지 대상자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할 권한과 재원을 갖춰야 한다. 정부도 소득에 따라 결정되는 임대료와 공공임대주택 종류별 원가 간의 차이를 공공임대사업자에게 보전해줘야 한다.

 

임대주택은 물리적으로도 재구성되어야 한다. 저소득층이 시세의 10~30% 수준에 불과한 임대료로 기한 없이 거주할 수 있으니 영구임대주택 단지는 주거복지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주거공간이다. 그러나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입주민의 절반을 넘는 우리 공공임대주택 단지의 현실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학생이 없어서 폐교가 생기고 구매력이 없으니 상가는 비게 된다. 그러니 이젠 영구임대주택을 해체해서 넓은 평형 임대주택도 함께 공급하고 청년층과 신혼부부도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재설계해야 한다.

 

이번 정책토론회에서 발표된 김영욱 교수의 자살률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공공임대주택 입주자의 자살률은 판자촌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 분양아파트는 저층과 고층 입주자의 자살률 차이가 거의 없는 반면, 공공임대아파트는 고층일수록 자살률이 훨씬 높았다. 특히 영구임대아파트의 고층 자살률은 10만명당 47.1명으로 저층의 25.5명보다 85%나 더 높았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다양한 입주자를 혼합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떤 입주자를 어느 층에 입주시킬 것인지도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한 채라도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에는 국고보조금이나 주택도시기금을 집중 지원하는 반면 이미 건설된 주택을 관리하는 데는 예산을 거의 배정하지 않았다. 올해 126만호의 공공임대주택 관리에 지원되는 예산은 노후 공공임대주택 시설개선 사업으로 배정된 300억원에 불과하였다. 15년 이상 된 노후 공공임대아파트의 화장실, 승강기, 조명기구를 교체하는 데 쓰이고 있다. 500만호의 공공임대주택을 관리하는 예산으로 8조2400억원(약 73억달러)을 사용하고 있는 미국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것만으로 주거복지가 완성되지 않는다. 입주민들 간의 소통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공간을 재배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지원해서 배제와 소외로부터 구출해야 한다. 노후된 공공임대주택은 단열이 안되어 추위와 더위, 소음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WAP라 불리는 에너지 복지정책을 통해 주택단열도 지원해야 한다.

 

1972년 7월15일 미국 건축가협회상까지 받았던 세인트루이스의 프루이트 아이고공공임대주택 단지의 폭파는 모더니즘의 해체로 읽히고 있다. 정부의 지원 축소와 사회적 배제가 초래한 끔찍한 결말은 우리 공공임대주택에도 재현될 수 있다. 정부는 마침 생활 SOC 확충에 획기적으로 많은 예산을 투자할 구상을 짜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이야말로 긴급하게 지원이 필요한 생활 SOC이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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