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27일 정책금융공사를 산업은행에 통폐합시키고 산은지주 산하의 대우증권 매각을 당분간 보류하는 내용의 정책금융개편안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아울러 부산에 선박금융공사를 신설하는 방안도 사실상 보류시켰다. 이중 선박금융공사 보류는 솔직히 말해 대선 당시 표를 얻을 욕심에 만들어진 공약을 어렵게 정지시켰다는 점에서 필자는 찬성한다. 문제는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 간 통합 부분이다.
산업은행의 기능 개편은 1990년대 후반 박정희 전 대통령 방식의 경제개발 전략이 한계를 드러내고, 외환위기에 따른 새로운 금융시스템의 구축이 화두가 되면서 금융개혁 논의 때마다 늘 단골 메뉴로 등장하곤 했다.
고승범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통합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러나 대략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자들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것은 산업은행이 담당하던 여러 역할 중 민간 금융기관이 수행하는 업무에 해당하는 것은 민영화하고, 산업은행은 순수 정책금융기능만 담당하도록 구조조정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투자은행 업무(증권업 중 기업금융 관련 업무)는 그 성격이 민간 금융업무에 해당하고, 이미 시장에 다른 금융기관도 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므로 시장마찰도 줄이고 민영화도 촉진하고, 투자은행 시장의 발달도 선도한다는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이를 민영화하자는 데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수렴했다.
예를 들어 산업은행의 투자은행 업무 담당 인력을 산업은행 자회사인 대우증권에 추가하여 업무 능력을 제고한 뒤 이를 시장에 매각하고, 잔존하는 산업은행은 순수 정책금융기능만 수행하도록 그 기능을 축소하는 방안이 심도 있게 검토되기도 했다. 이 방안은 투자은행 업무의 발전을 촉진하고, 정책금융 기능을 재정비하여 그 효율성을 제고하는 한편, WTO 협정 체제하에서 산업은행이 어렵게 획득한 통상법상의 각종 예외적인 지위를 보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대안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상한 민영화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정책금융공사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산업은행은 상업은행 업무와 투자은행 업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은 채 ‘무조건 민영화’시키는 방식이 추진된 것이었다. 산업은행의 태도도 묘하게 변화했다. 처음에는 용감하게 투자은행 업무, 즉 과거의 증권업을 하겠다더니, 곧 은행업이 주는 달콤함에 안주하여 계속 은행으로의 길을 걸었다. 그 결과 오늘날 산업은행은 소매은행을 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작고, 소매은행을 포기하고 투자은행 업무만 하기에는 쓸데없이 지점이 많은 ‘이상한 금융기관’이 되었다. 민영화를 계속할 수도 되돌아가기도 어려운 계륵이 된 것이다.
이번 금융위의 개편안은 또 하나의 장애물을 추가했다. 산업은행 개편은 “나 몰라라”한 채 두 기관의 통합만 문제로 삼은 것이다. 물론 굳이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의 통폐합 문제만을 말하라면 정부 방침이 옳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승범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통합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그러나 통합 이전에 선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그것은 정부가 침묵하고 있는 산업은행의 개편이다. 우선 정부는 산업은행의 업무 중 민영화할 부분은 민영화하겠다고 명확히 천명하고 차근차근 이를 실천해야 한다. 특히 대우증권의 매각이 중요하다. 이를 매각해야만 비로소 민영화의 가장 큰 대의명분인 투자은행 업무의 발전과 부합할 수 있고, 이런 방식으로 민영화를 해야만 겉으로 투자은행 업무를 한다면서 속으로 은행업이 주는 달콤함에 안주하려는 왜곡된 인센티브를 통제할 수 있다.
그 다음 산업은행의 나머지 기능은 대폭 축소하고 정책금융공사와 중복되는 부분이나 통상마찰을 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정리해서 정책금융공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과다하게 팽창한 지점 조직은 어떤 형태로든 정리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정책금융공사를 흡수 통합하여 순수 정책금융조직으로 남아야 한다.
어쩌면 산은지주는 민간과 정부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광대한 금융제국을 건설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히려 산업은행의 역할을 축소하고 재편하는 것이 이 얽히고설킨 문제를 푸는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실마리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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