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채 칼럼]재벌 3세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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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박용채 칼럼]재벌 3세를 위하여

by eKHonomy 2017. 2. 21.

안보가 늘 우선이던 이스라엘에서 재벌에 대한 분노가 분출한 것은 월가 점령 시위가 시작되기 두 달쯤 전인 2011년 여름이다. 주거비 폭등에서 촉발된 시위는 고물가의 원인이 재벌 독점 구조 때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재벌개혁 요구로 옮겨붙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10개의 재벌가문이 산업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들은 순환출자를 통해 문어발식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재벌을 견제해야 할 관료들은 퇴직 뒤 재벌기업에 들어가 고액연봉을 받았고, 언론은 광고를 잃을까 재벌편을 들었다. 시위가 불붙었을 때는 경영이 1세에서 2세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이스라엘의 재벌 독식을 한국에 비할까. 한국에서 재벌은 절대 포식자다. 주요 기간산업은 물론이고 골목상권에까지 침투해 있다. 30대 재벌의 자산은 국가 총자산의 40% 수준이고, 계열사도 1700개를 넘는다. 10년 전에 비하면 자산이나 계열사 수가 3배 이상 늘었다. 여기서 질문 하나. 최근 재벌 계열사가 폭증한 까닭은? 답은 챙겨줘야 할 자녀가 많아서.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과거 기업은 필요한 사업분야를 확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 않다. 재벌들은 요즘 서비스, 명품 수입, 문화사업 같은 본업과는 거리가 먼 분야로 무한 확장 중이다. 이런 분야의 지배주주는 대부분 방계 인물들이다. 여성들의 경영권 참여도 과거에 비해 활발해졌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에 대한 시선은 극과 극이다. 경제에서 차지하는 현실적인 지위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에서는 편법·비리·특혜 같은 악취를 함께 맡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용(삼성), 정의선(현대차), 조현준(효성), 김동관(한화), 조원태(대한항공), 박세창(아시아나) 등 3세들이 경영전면에 등장했다. 3세들은 “회사를 이끌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식으로 자신감을 표명한다. 그 증좌로 해외에서 경영공부도 했고, 충분히 실무경험도 했다는 점을 든다. 여기서 질문 둘. 구속된 이재용씨를 바라보는 3세들의 시선은? 초록은 동색임을 떠올리면 굳이 물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기업하기 힘들다는 볼멘소리투성이일 것이다. ‘주면 줬다고, 안 주면 안 줬다고 팬다’는 경총 부회장의 발언은 이들의 심사를 대변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3세들을 봐야 하는 시민들의 시선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3세는 흔히 무임승차 세대로 분류된다. 도련님 소리를 들으며 컸고, 해외 유학을 통해 20대에 임원이 된다. 그사이 가신들은 차기 회장님을 위해 증여를 통한 비상장사 주식 취득,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기업 성장 그리고 인수·합병을 통해 3세를 주력사의 대주주로 만들어놓는다. 이 과정에서 탈법과 편법은 무마됐다. 불법 경영권 승계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 사법부는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 운운하며 형량을 줄여주거나 사면했다. 한국경제 발전에 피땀 흘린 노동자들이 그 공로를 인정받아 형량이 줄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들은 늘 예외였다.

 

페이스북 창업주 마크 저커버그는 엊그제 페이스북에 올린 장문의 글을 통해 “지금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화두를 던졌다. “지금 이 시대에 페북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글로벌 공동체를 만드는 사회적 인프라를 건설하는 것”이라는 얘기도 곁들였다. 33세라고는 믿기지 않는 접근법이다. 반면 한국 시민들은 3세들의 생각과 이상,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아픔이나 사회적 약자의 구조 신호에 응답한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 세대가 있는데 나설 수 없다고? 가부장적 유교식 문화와 미국식 창의성 교육을 두루 받아 합리성으로 무장했다면 구성원들의 미래에 입을 다무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이다.

 

이스라엘은 재벌독식 문제가 표면화된 뒤 독점해소 노력을 전방위적으로 진행했다. 한 예로 통신사 진입규제를 풀어 3개에서 6개로 늘렸다. 휴대전화요금은 순식간에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재벌 총수가 구속되면 한국 경제가 결딴나고 하향 평준화될까. 그들이 없다고 기업이 무너질 까닭은 없다. 되레 부조리가 근절되면 경제는 더 잘 돌아갈 것이다. 당장의 어려움 때문에 변화하지 않으면 훗날 더 큰 비용을 지불하는 게 세상의 문법이다.

 

여기서 마지막 질문. 3세들이 사는 법은? 법과 제도의 투명성 확보와 더불어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이재용의 실패는 가신에게 둘러싸인 채 아버지 세대와 같은 방식으로 권력과 뒷거래를 통해 움켜쥐려고만 한 데서 비롯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및 측근 몇몇에 둘러싸여 국가를 망친 것과 다르지 않다. 은밀하게 권부와 대화하는 시간에 열린 공간으로 나와 사회와 소통하면 신뢰도는 훨씬 올라갈 것이다. 그게 3세도, 국가경제도 사는 길이다.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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