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어제 위안·달러 환율을 달러당 6.3306위안으로 고시해 위안화 가치가 이틀간 3.5% 평가절하됐다. 해외 언론은
‘환율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위안화를 평가절하하면 수출품의 가격이 낮아져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수출은
늘고, 수입가격이 높아져 수입은 줄어드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세계화된 경제에서 각국이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환율전쟁이
처음은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부터 미국은 양적완화 정책을 적용, 채권을 대량 매입해 시중에 달러를 풀어
달러화 가치를 낮췄다. 일본도 2012년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통해 시중에 돈을 풀어 기준금리와 엔화 가치를 떨어뜨렸다.
유럽연합(EU)은 지난 3월부터 대규모 양적완화 프로그램으로 환율전쟁에 가세했다. 이번에는 미국과 경제 규모 세계 1, 2위를
다투는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대폭 떨어뜨려 환율전쟁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환율전쟁은 ‘이웃 나라 거지 만들기(beggar-thy-neighbor)’ 정책으로도 불린다. 상대국 통화 강세를 초래해 한정된 시장의 파이를 빼앗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위안화 절하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나라로 한국이 지목된다. 한국은 전체 수출의 25.3%, 수입의 20.0%가 중국에 집중돼 있다.
당
장 위안화 절하 여파는 국내 금융시장을 크게 요동치게 했다. 어제 코스피지수는 장중 1% 넘게 급락하다가
11.18포인트(0.53%) 하락한 1975.47로 마감해 5거래일째 약세였다. 외국인 투자자는 어제 2994억원 순매도를
기록하는 등 6거래일 연속 팔자세를 보이며 한국 이탈 조짐마저 보였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7원 급등한
1190.8원으로 마감했다. 3년10개월 만에 최고치이다. 금융시장이 이틀째 혼란에 빠진 것은 당국이나 시장 관계자들이 위안화
절하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의 금리 인상 시기만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한국 경제가 중국의 위안화 절하라는
‘기습’에 당한 것이다.
11일 중국 베이징의 식료품 가게에서 한 여성이 100위안짜리 지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인민은행은 이날 달러당 위안화 환율을 전날 대비 1.86% 오른 6.2298위안으로 고시해 20여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평가절하했다._연합뉴스
전 세계가 환율전쟁 운운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과
달리 정부 당국자는 위안화 절하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어제 “중국과 한국은 완제품 경쟁 관계가
많지 않고 한국이 중간재를 수출하면 중국이 이를 가공 수출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라며 “위안화 평가절하로 중국의 수출이 늘어나면
한국 경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일부만 보고 내놓은 견해는 아닌지 의심스럽다. 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중국의 중간재 수입비중은 2005년 59.3%에서 지난해 49.2%로 줄었다. 한국으로서는 최종재 수출을 늘리고, 중간재는 줄여야 할 상황인데, 최 부총리는 중간재 수출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을 하고 있다.
중
국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수출시장인 미국에서는 중국과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 내 한·중 수출 경합도는 2010년
0.290에서 지난해 0.346으로 높아졌다. 특히 휴대폰·부품(0.845), 석유제품(0.643), 조선(0.558),
전기·전자제품(0.505) 등은 경합도가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이들 중국 제품의 미국 수출이 늘어날수록
한국 제품은 밀려날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것은 중국 등의 환율전쟁에 맞서 당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다만 기업과 개인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과도한 환율 급등락은 미세조정을 통해서라도 막아야 한다.
일부에서 금리 추가인하를 거론하고 있으나,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 수 있는데다 소비와 투자도 살아나지 않고 자산거품 우려도 큰
만큼 부작용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또 수출기업은 품질 수준을 높여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정부는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며,
수출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한국 경제의 근본 과제도 다시 점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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