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에서 ‘킹(King)만수’로 불렸던 강만수씨는 기획재정부 장관 재임 기간이 11개월에 불과했다. 외환위기 직후 재정경제원 차관에서 불명예 퇴진했던 그는 경제사령탑에 오르며 절치부심했으나 경제여건을 무시한 성장 위주의 정책, 독선적 성격과 불통으로 신뢰를 잃었다. 대기업에 유리한 고환율 정책과 대규모 감세를 밀어붙이며 서민들과 갈수록 멀어졌다. 경제사령탑에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다음달 2일이면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임종룡 내정자의 어정쩡한 동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된다. 경제 컨트롤타워의 공백으로 내년 경제정책운용방향 마련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부작용이 심각해 하루빨리 혼선을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유 부총리 역시 강만수씨처럼 경제수장으로서의 능력에 대해 시장의 신뢰가 미덥지 못한 게 사실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없었다면 임 내정자로의 교체는 일정 부분 신뢰제고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임 내정자를 지지하는 쪽에선 “그가 현실적 대안이다”라고 평가할지 모른다.
지난 26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제5차 촛불집회에 경기 수원시에 사는 농민 등이 소들을 데려와 행진에 참여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박근혜 체포단’으로 이름 붙이고, 소의 등에 ‘근혜씨 집에 가소’ ‘근혜씨 하야하소’ 등을 써붙였다. 이석우 기자
경제부총리 자리를 한시도 비워둘 수 없고 요즘 같은 격동기에는 더욱 그렇다는 주장도 일견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청와대가 정상적일 때의 얘기다. 지지율이 4%에 불과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남아 있는 한 임 내정자를 경제 컨트롤타워로 세운들 얼마나 경제가 달라질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국회 과반을 점한 야당과 시민사회에서는 현 경제팀 일원인 임 내정자의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대책에 대해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경제부총리는 기본적으로 청와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하는 역할을 하게 돼 있다. 관료 출신이라면 더욱 그렇다. 청와대는 장차관과 차관보 등 정무직 공무원들에 대한 인사권을 쥐고 있다. 청와대 인사파일에 관료들이 갖는 두려움은 적지 않다. 태생적으로 청와대에 코드를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은 조원동 전 경제수석이 국장 시절 차관보 승진에서 탈락한 것도 음주운전 전력이 청와대 인사검증 과정에서 문제 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경제부총리는 정치적 휘발성을 가진 예산이나 세제개편 등을 대통령과 여당의 재가 없이 단독으로 다루기 어렵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정치권의 협력을 얻는 것은 대통령과 여당의 몫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는 한 미래의 공동체 이익을 위해 다같이 희생하자고 시민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통령은 이미 사회를 통합하고 국회를 상대로 경제 리더십을 발휘할 힘이 없다. 그의 경제 실력은 이미 입증됐으며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의 폐해를 시민은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이런 대통령이 청와대에 건재하고 경제부총리가 그를 의식해야 한다면 경제주체들로부터 신뢰를 얻는다는 건 요원한 일이다.
경제부처 40대 과장은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 남아 있는 것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준다”고 말했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현장에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공무원들도 있다. ‘공심’(공무원 민심)은 박 대통령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공직사회에선 시민들의 조세 불복종 운동이 벌어지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 청와대의 기풍으로는 공무원들에게 올바른 품행도 요구할 수 없다. 결국 이런 상황을 끊으려면 대통령이 물러나고 그런 다음 제대로 된 경제부총리를 세우는 것이 순리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것과 같다. 그만큼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갈수록 줄어드는 일자리, 늘어나는 가계부채 등으로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고통이 극에 달하고 있다. 시민들이 낸 세금이 최순실 예산으로 흘러가고 일부 기업들은 최순실을 위해 거액을 갖다 바치며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려 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기득권층을 혁파할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기에 남은 박근혜 정부 1년 동안 그럭저럭 위기관리에 치중하면서 고비를 넘기는 게 중요한 것 아니냐고 한다면 너무 무책임하다. 시민들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소신을 가진 인사가 경제를 총괄할 것을 바라고 있다.
괴테는 “역사의 흐름이란 뜨개질과 같아서 과거에 잘못 꿴 바늘 한 코에서 나라의 운명이 달라지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비선 실세와 결탁한 대통령 때문에 국정은 잘못된 길로 치닫고 있다. 경제가 더 이상 망가지지 않기 위해선 대통령이 하루빨리 물러나야 한다. 대통령 퇴진 없이 경제 컨트롤타워를 빨리 세우자고 주장한다면 “문제는 대통령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오관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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