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미국은 2006년 하반기부터 금융 ‘위기’가 시작되었고 2008년 3월 베어스턴스가 파산함에 따라 금융 ‘공황’의 단계로 들어섰다.
부실덩어리의 거대한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및 기타의 금융조직을 어떻게 살리는가가 정책 당국의 긴급한 당면과제가 되면서, 정부가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금융기관 구제에 사용하는 것을 ‘사회주의’로 부르는 경향이 생겼다.
이리하여 이제 “우리는 모두 사회주의자”라고 세계의 베스트셀러 시사 잡지가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아이들에게 ‘가든’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불고기 식당’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똑같은 지적 수준이다. 또 하나 웃기는 이야기가 있다.
사회주의 쇠락후 자만에 도취
미국의 라스무센 여론조사(4월9일자)에 따르면 미국 성인에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자본주의를 선호한 비율은 모든 성인 중 53%, 30세 이하의 성인 중 37%, 공화당 지지자 중 92%, 민주당 지지자 중 39%, 투자자 중 83%, 비투자자 중 40%이었다고 보도하면서, ‘자본주의’ 대신에 ‘자유시장 경제’라고 했더라면 더욱 높은 선호도가 나왔을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소련식의 ‘사회주의’ 사회가 망했으니까 자본주의 사회가 영구불멸하리라고 뽐내다가 지금과 같은 공황에 빠진 것이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인류의 역사는 어떤 목표나 종말을 가지지 않는다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이성적인 사람의 태도일 것이다. 소련 사회가 망하는 것을 보면서 이성적인 사람이었다면 자본주의는 소련식의 사회가 아닌 다른 형태의 ‘새로운’ 사회로 진화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련=새로운 사회’라는 공식을 ‘골방’에서 학습하다가 소련의 멸망과 함께 사회개혁운동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뉴라이트의 ‘자아비판’은 언론·출판의 자유, 학문·양심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해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람들은 지금의 경제공황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크게 깨달을 수 있다.
첫째로 우리가 가난한 것이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400만명 정도의 실업자가 있기 때문에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문을 닫고 있는 공장이나 사무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물적 자원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런 인적·물적 자원을 결합한다면 고용이 늘어나고 생산이 증가하며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주민들의 ‘생활 보호’보다는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삼는 자본가들이 공장을 재가동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남아도는 인적·물적 자원을 사용해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자원에 대한 경영권을 자본가계급으로부터 주민 전체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공황 교훈 삼아 변혁 필요
둘째로 이렇게 되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부터 생기는 자원의 거대한 낭비를 제거할 수 있다.
자본가들 상호간의 경쟁에서 패배한 수많은 자본가가 투자한 자원은 큰 낭비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참여계획경제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해서는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민과 노동자가 정치적으로 기득권 세력을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스웨덴의 복지국가는 사회민주당의 장기집권과 분리할 수가 없다.
정부가 서민의 불만 표시를 경찰력과 검찰력으로 억압하면서 서민을 위하겠다고 떠드는 것은 서민을 속이는 일이고, 이런 일이 없는 것이 ‘새로운 사회’의 하나의 특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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