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하나요?”
건설·부동산을 담당한다는 이유로 종종 듣는 질문이다. 정부 정책만 믿고 전셋집을 전전했는데 서울 집값이 이미 ‘범접’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하소연하는 지인부터 신혼집을 전세로 얻어야 하는지 무리해서라도 대출을 받아 자가로 마련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후배까지. 사연은 다양하다. 그러나 이들 심리에는 공통적으로 지금이 아니면 내집마련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불안이 깔려있다.
모아놓은 돈이 많으면 이렇게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출규제가 강화됐다지만, 서울에 내집마련을 위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이든 뭐든 해도 안전하겠냐는 속내가 이 질문에는 담겨있다. 내 입장에서는 덜컥 사라고 했다가 집값이 떨어져도 낭패고, 괜히 사지 말라고 했다가 집값이 계속 올라도 난감한 노릇이다.
한 공인중개사에게 물었다.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는 어떻게 답해야 하는 것이냐고. 그는 에둘러 답하는 게 상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쓰는 방법을 알려줬다. “현재 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대출을 받는 것이라면 집을 사도 좋다.” 다분히 교과서적인 이 답변은 거주 목적의 실수요자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살고있는 집이라면 가격이 떨어질 때도 있고 오를 때도 있으니 책임 추궁을 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선택은 당사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 서적들을 뒤적여봐도 해법은 비슷하다. 다양한 투자전략과 유망 지역을 제시할 뿐 ‘마지막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한다’로 결론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기자들도 올해 집값 전망 등을 위해 비슷한 질문을 부동산 전문가들에게 한다. 각 전문가가 내놓는 답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에는 하락이 대세였다면 올해는 강보합 전망이 많은 식이다. 한 대학교수는 “(집값이 오를지 안 오를지를 아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고도 했다.
“집 없는 서민들은 집 안 사고 원상회복될 때까지 마음 놓고 기다려도 되는 것인가요?”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유사한 질문을 받았다. “일부 지역은 서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급격한 가격 상승이 있었는데 (취임 초 수준으로) 원상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문 대통령 발언에 대한 추가질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대답이 불가능한 질문”이라면서도 “그런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실린 무게감은 우리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자산의 70% 이상이 부동산에 쏠려있는 한국사회에서 문 대통령의 공언은 환영보다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책임지지 못할 발언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향후 부동산 대책의 성공여부는 서울 집값이 취임 초기 수준으로 떨어졌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부담도 생겼다.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잠깐 주춤했던 집값이 다시 들썩이면서 정책 불신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다. 그러나 이번 ‘원상회복’ 발언에 다시 한번 기대를 걸고 부담 가능한 수준의 내집마련을 희망하는 무주택 서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들의 입에서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하나요’가 아니라 ‘지금 집을 사면 되겠다’라는 말이 나오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이성희 경제부>
'기자 칼럼, 기자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 (0) | 2020.03.12 |
---|---|
수치 오류가 부풀린 ‘공정위 성과’ (0) | 2020.01.31 |
일자찢기 잘하는 방법 (0) | 2019.12.24 |
포용이 아닌 포괄성장이 필요하다 (0) | 2019.12.05 |
[기자칼럼]국일고시원 화재, 그 후 1년 (0) | 2019.11.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