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지난달 통상임금 지침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임단협 교섭을 앞두고 노사 간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부의 바람과 달리 현장에서는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정기상여금이라도 재직 기준에 따라 통상임금 포함 여부가 결정되고, 새로운 노사 합의를 이루기 전까지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주된 쟁점이다. 노동부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법리에 충실했다고 밝혔지만, 노동계는 친기업적이고 자의적인 확대 해석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 사용자 측 악용 소지 다분… 노동자 권리 오히려 제한
10%대인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을 고려할 때 80~90%의 노동자에겐 최근 통상임금 논쟁과 정년 60세 의무화 등은 그림의 떡일 가능성이 크다. 나머지 노동자들에게도 의미 없는 일이 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의 전향적 판결과 노동부의 정상적인 법 집행, 사용자의 발상의 전환을 통한 기본급 중심의 임금체계 단순화와 합리화 및 장시간 노동체제 개선으로 정상적인 노사관계를 기대해왔던 노동계는, 그동안 소송보다는 노사 간 자율적이고 순리대로 노동문제 현안을 풀도록 노력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계의 기대를 송두리째 배반한 대법원 판결과 고용노동부 지침으로 사용자 측의 악용과 위법, 변칙 그리고 이른바 신의칙 위반(뒤통수 때리기)이 전면화될 조짐이다. 노동현장의 엄청난 혼선과 갈등으로 예기치 못한 큰 재앙이 우려된다.
입법의 미미, 정부와 기업의 저임금 정책과 장시간 노동체제 때문에 생긴 통상임금 문제, 노동자들이 법대로 계산하고 받아왔다면 세계 제일의 장시간 노동 체제는 벌써 개선되었을 것이다. 1953년 법 제정 이후 노동자들은 법대로 돈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임금채권의 소멸시효인 3년치만 받고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인데, 대법원은 신의칙을 내세워 과거의 불법적인 밀린 임금을 해소할 가능성을 제한하고, 소송의 불확실성과 불복 가능성을 키움으로써 소송 수행 능력이 뛰어난 대형 로펌에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로또 판결’ ‘대형 로펌의 개가’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게다가 노동부가 재직자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임금협약 만료까지 신의칙이 적용되며 취업규칙도 신의칙이 적용되는 관행이라고 자의적, 사용자 편향적으로 해석하는 등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제한함으로써, 사용자에겐 퍼주기, 노동자에겐 퍼가기로 일관한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과거 각종 반노동자적, 노동통제적 지침을 통해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한 단체협약에 대해 강압적으로 개입하고, 시정명령을 남발한 사례와는 사뭇 차이가 있다.
‘통상임금 설명회’(출처:경향DB)
무릇 진리와 진실은 단순 명쾌한 법. 대법원 판결과 노동부 지침이 60~70페이지 분량이 되고, 어렵고 생경한 문구로 되어 있다는 점은 꼼수가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해석하고 결정할 최종 권한, 즉 칼자루를 쥔 힘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법원 판결과 노동부 지침이 소송 수행 능력이 탁월한 대형 로펌과 돈과 권력 등 막강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기업들로부터 환영받는 속내가 있다.
산업현장의 소송 남발과 추가적 비용 부담이 걱정되는가. 기업주들이야 툭하면 법대로를 외치지만 우리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건강성을 믿는다. 노동자들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미래도 그럴 것이다. 묵묵히 일하면서 키워왔던 자신의 생계 터전이 잘되기를 누구보다도 원한다. 고용불안의 시대에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다만 사용자들이 묵묵히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를 온갖 이유를 대면서 갑자기 뒤통수를 치지 않으면 된다.
최저기준인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으려고 각종 변칙과 탈법을 하지 말자. 노동자를 함부로 자르거나 비정규직으로 내몰지 말자. 대법원 판례를 핑계대거나, 정부 눈치를 보지 말고 기업인의 소신과 진심, 그리고 성의를 보여주면 된다. 경영참여를 보장해 투명경영과 노사 간 신뢰 제고에 힘쓰고, 현금이 없으면 종업원 지주제를 활용해 우호 지분 확보로 경영권을 방어하고, 노동자의 주인의식 고취와 노사 협력체제를 구축하자. 누이 좋고 매부 좋다. 그것이 저임금·장시간 노동·경쟁력 저하라는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첩경이다. 아울러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강행 규정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전제하면서도 무효라는 주장으로 뒤통수 치지 말라는 대단함과 노동쟁의에는 경영권 간섭의 잣대를, 임금청구 분쟁에는 경영책임의 모순된 잣대를 들이대는 사법만능의 비정상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
<이정식 |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
■ 혼란 막으려 지침… 모호한 부분은 입법으로 해결을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은 후, 노동현장은 혼란 속에 빠졌다. 고용노동부가 통상임금 지도지침을 내놓은 것은 이러한 현장의 혼란을 막고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재계는 재계대로 불만인 모양이다. 특히 노동계는 고용노동부의 지침이 당초 대법원의 판결을 지나치게 편향되게 확대 해석한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대체로 비난의 화살은 두 가지 점에 집중되고 있다. ‘재직자에게만 지급되는 정기상여금’과 ‘신의칙의 적용 시점’에 관한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우선 고용노동부는 ‘재직자에게만’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해석은 ‘법논리적’으로 볼 때 대법원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컨대 임금협약에 따라 정기상여금을 매년 6월15일자에 지급하되, 지급시점 기준 ‘재직 중인 자에게만’ 지급하도록 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5월15일자 중도퇴직 근로자는 정기상여금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된다. 이런 결과는 그 정기상여금이 ‘근로의 대가로 미리 정해 놓은 금품’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이다.
만약 노사가 그 정기상여금을 ‘근로의 대가로 미리 확정해 놓은 금품’, 즉 ‘통상임금’으로 보았다면, 적어도 5월15일까지 근로한 데 따른 대가는 지급되도록 했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법원은 일할계산이든 월할계산이든 중도퇴직 근로자에게도 일부 지급되도록 한 정기상여금이라면 이를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고 있다.
다른 한편 신의칙 적용 시점도 문제다. 노동계는 대법원 판결 시점인 2013년 12월18일로 본 반면, 고용노동부는 임금협약의 유효기간이 만료된 시점으로 보았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고용노동부의 해석이 대법원의 입장에 충실한 것으로 판단된다. 임금액은 기업의 이윤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선에서, 노사의 자율적 합의로 결정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합의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배제하는 대신 다른 명목의 수당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임금액이 결정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정해진 임금액은 그대로 받으면서 이와는 별도로 통상임금 배제 합의의 무효를 들어 추가수당 지급을 요구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신의’에 반해 ‘예상 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대법원이 ‘형평’과 ‘정의’의 관념에 비추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당초 임금협약을 통해 정해진 임금액이 그대로 지급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신의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이 판결 이후의 ‘합의’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법 논리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노동현장에서의 ‘감(感)’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한 흠이 크다고 본다. 노사가 임금을 주고받을 때 복잡한 법논리까지 고려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치국가에서 법원의 판결은 ‘비판’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부정’될 수는 없다. 노동계가 대법원이 아닌 고용노동부에 유독 비난의 화살을 겨눈 이유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로서는 억울한 노릇이겠지만, 그마저도 고용노동부의 몫이다.
따지고보면 해법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대법원 판결 내용 중 노사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거나 모호한 점이 있다면, 입법을 통해 바로잡으면 된다. 이런 본질적인 해법을 외면한 채 노와 사가 정부를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만 하는 듯해 안타깝다. 노·사·정 모두가 한번쯤 호흡을 가다듬고 미래지향적 임금체계 개선 논의에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혁 |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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