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주가지수가 한국 경제에 대해 말해주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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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주가지수가 한국 경제에 대해 말해주는 것들

by eKHonomy 2022. 12. 9.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 증시는 장기 횡보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라는 유동성 모르핀을 맞았던 2020년 장세가 예외였을 뿐, 주식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박스권으로 회귀하고 있는 듯하다. 

12월7일 코스피(KOSPI·한국종합주가지수)는 2393포인트로 거래를 마쳤는데, 10년 전인 2012년 12월7일 마감 종가는 1957포인트였다. 10년 동안 코스피는 22.3% 오르는 데 그쳤다. 

한국 증시는 과거 세 차례의 장기 강세장을 경험했는데, 세 시기 모두 강력한 경제 성장 엔진이 존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차 강세장은 1972~1978년에 나타났는데 당시 주가 상승의 동력은 중동 건설붐에 따른 오일머니 유입이었다. 2차 강세장은 1985~1988년의 3저 호황을 등에 업고 현실화됐다. 3차 강세장은 중국 특수를 누리면서 나타났다. 2004~2007년 코스피는 134%(연평균 23.6%) 상승했다.

최근 10여년 코스피의 정체는 한국 경제의 활력 저하와 맞물려 있다. 구체적으로는 중국 특수의 약화 때문이다. ‘중국 경제 자체의 성장 둔화 → 인건비 상승과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중국 위상 약화 → 시진핑 집권 이후 사회주의 이념으로의 경도 → 중국 기업의 성장과 한·중 경쟁 격화 → 지정학적 이슈의 부각과 중국의 보복 → 미·중 갈등과 글로벌 밸류체인의 폭력적 재편 → 2022년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 적자 반전’ 등은 지난 10년간 한국의 대중국 특수가 약해지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특히 한국의 대중국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은 내수가 이끄는 성장은 거의 불가능한 경제 구조가 돼 버려 수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형국인데, 중국으로의 수출이 한국 수출의 명운을 좌우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2.7% 성장했는데, GDP 하위 항목들 중 민간소비가 1.9%, 설비투자 2.7%, 건설투자 2.0%, 순수출 3.0%, 정부지출이 4.0% 증가했다. 설비투자는 성장률에 수렴하는 정도로 이뤄졌고, 순수출과 정부지출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고, 민간소비와 건설투자는 성장률을 끌어내렸다.

내수는 민간소비와 설비투자, 건설투자, 정부지출 등으로 구성돼 있다. 내수 항목들 중 가장 규모가 큰 부문은 민간소비인데, 한국의 민간소비는 만성적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명목 GDP 규모를 넘어선 가계부채와 가계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는 점이 현실적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과도한 가계부채에 따른 원리금 상환 부담은 민간소비를 잠식하고 있고, 주택 구입에 사용된 자금은 집 값이 오르더라도 매몰자금에 가깝다. 미국처럼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담보가치 상승을 대출에 활용하는 문화에서는 주택가격 상승이 소비를 증가시키는 자산효과가 존재하지만, 한국에는 그저 부동산에 묶인 자금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특히 상당 기간 동안  높은 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현 상황에서는 향후 민간소비의 둔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투자가 부진하다는 통념과는 달리 설비투자는 GDP 성장률에 수렴하는 정도로는 이뤄져 왔다. 또한 GDP에 잡히지 않는 해외투자까지 고려하면 한국 기업들이 돈만 쌓아두고 투자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온당치 않다. 다만 설비투자가 한국의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수준까지 늘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글로벌 밸류체인 재편과 경제 블록화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투자 역시 경제적 자원의 일회적 소모가 아닌 장기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영역이 이 땅에 남아 있는지 의문이다.

결국은 수출과 정부 재정지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200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한국 경제와 주식시장의 향방은 수출 경기에 연동되는 양상이었고, 성장 둔화 국면에서는 재정지출이 급격한 하강을 방어하는 역할을 해왔다. 박근혜 정부 후반부인 2015년부터 재정의 성장 기여도가 빠르게 상승해 왔다. 다만 재정건전성과 시장의 자율을 강조하는 보수 정권의 출범으로 재정의 역할은 향후 약해질 개연성이 높다. 결국 수출 경기가 한국의 경기와 주식시장의 향방을 결정짓는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과거 경기 침체 직후 한국 경제가 회복되는 패턴은 ‘예외 없는’ V자형 급반등이었고, 수출이 이런 과정을 이끌었다. 특히 경기 침체 국면에서 가속화됐던 원화 약세는 이후 한국의 수출을 비약적으로 늘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원·달러 환율이 2000원에 육박했던 외환위기 직후와 1600원대에 올라섰던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한국 경제는 수출 호조를 배경으로 빠른 회복세를 나타낸 바 있었다.

이번에는 수출의 V자형 회복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위기 국면보다 환율 조건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이 첫 번째 이유이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는 달러 대비 한국 원화의 절하 강도가 유독 강했다. 외환위기는 한국 고유의 리스크였고,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는 외화 유동성 관리 실수로 한국 시중은행들의 외화 수급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렇지만 올해 경험했던 원·달러 환율 상승은 ‘원화 약세’라기보다는 주요국 통화에 대한 광범위한 ‘달러 강세’에 가까웠다. 특히 일본 엔화가 한국 원화보다 달러 대비 더 약했다. 10~11월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로 반전되고 있지만, 일본은 20%가 넘는 수출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출 회복의 경로가 과거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대중 무역수지 악화는 두 번째 걱정거리이다. 한국의 대외교역에서 중국이 미친 역할은 지대했다. 2000~2021년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7900억달러에 달했는데, 이 중 대중 무역수지 흑자가 7100억달러였다. 대중 무역수지는 지난 5월 10억달러 적자를 시작으로 최근 7개월 중 6개월이 적자이다. 대중 무역수지 적자는 한·중 수교 직후였던 1994년 8월 이후 처음 나타나는 현상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경제 봉쇄가 이뤄지고 있는 비정상적 상황이기는 하지만 지난 수년간 대중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계속 축소되다가 적자로 반전됐다는 점에서 대중 교역에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봐야 할 듯하다. 주가지수의 장기 정체는 한국 수출의 더딘 회복과 이에 따른 경제의 구조적 저성장을 미리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연재 |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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