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긴축 시대의 새로운 정책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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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

통화긴축 시대의 새로운 정책조합

by eKHonomy 2022. 11. 17.

10월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다소 둔화된 것으로 나타나 시장의 안도감을 낳고 있다. 하지만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더라도 고물가 지속으로 금리 고점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입장이다. 내년에도 금리 인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국내 통화정책 운용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내외 금리차 확대로 인한 자본 유출 우려 탓에 미국과의 동조적 금리 인상이 요구되지만, 동시에 부동산이나 자금시장 경색 등과 맞물린 국내 금융불안을 고려하면 운신의 폭이 제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물론 코로나 위기 초입에도 급격한 자본 유출입으로 인한 취약성 현실화 우려가 현안으로 제기된 바 있다. 여기서 얻은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은 국제적으로 자본 유출입의 변동성에 맞선 일국의 통화정책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 핵심 고리는 ‘글로벌 금융사이클’이다. 즉 자산가격, 자본 흐름 및 차입 등이 글로벌 차원에서 강한 동조화 흐름을 보인다는 것이다. 금융·자본 흐름의 자유화에 따른 많은 편익에도 불구하고, 대내외 금융여건의 동조화로 인한 자본 유출입의 변동성 심화가 오히려 대내 경제 및 금융 안정을 훼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국제경제학의 전통적인 ‘트릴레마’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진단이 나온다. 트릴레마는 자유로운 자본 이동과 환율 안정, 통화정책의 독립성 등 3가지 목표가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는 뜻인데, 지금처럼 글로벌 금융사이클이 주도하는 상황에서는 환율체제(변동환율 대 고정환율)와 무관하게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담보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트릴레마가 아니라 ‘딜레마’의 세상인데, 이 경우에는 독립적인 통화정책은 자본 이동을 직간접적으로 관리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전통적인 통화정책 외의 정책 수단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크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또 코로나 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도 거듭해서 자본 유출입 위험에 맞서 통화정책 이외에도 외환시장 개입을 포함하여 자본 이동 관리와 거시건전성 조치 등을 아우르는 ‘통합정책체계’(Integrated Policy Framework)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도 인플레이션 부담이 큰 상황에서, 또 내외 금리차로 인한 환율불안이 이어지는 환경에서는 당장에 금리 인상을 멈추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국과의 인플레이션 격차가 큰 데다 국내 부동산 불안이나 신용경색 위험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통화긴축 동조화에만 매달리기는 어렵다. IMF가 권고한 것처럼, 환율불안과 자본 유출 위험을 억제할 외환시장 개입이나 다양한 안전장치들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를 통해 국내 통화정책은 진정으로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관리하는 데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글로벌 금융사이클의 변동성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국내 투자자 기반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대내적으로 외화차입 의존성을 줄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여전히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크다. 해외 금융여건 경색과 환율불안으로 이들이 포지션을 조정하게 되면 국내 금융시장도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된다. 지난 10여년간 고수익을 좇아 해외투자가 급증해 왔지만, 대내 금융안정 차원에서 연기금이나 기관투자가들의 국내 투자 환류를 유도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나아가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그동안 은행권 위주의 규제 안착에도 불구하고 정작 비은행 금융권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금융안정 측면에서 많은 공백을 낳고 있다. 특히 레버리지와 유동성 규제로 은행의 시장조성자 역할이 위축되고, 비은행 중개플랫폼 등이 그 자리를 메우면서 시장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금융시장 안정에 정부의 능동적인 ‘최종 시장조성자’ 역할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유동성 지원기구나 구조조정기구의 설립과 운영에 은행이나 민간에 의존하는 방식보다는 미국처럼 정부의 발권력을 활용한 직접 개입 방식을 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연재 | 경제와 세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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