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증세’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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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부자증세’ 이제 시작이다

by eKHonomy 2011. 12. 29.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정치권에서 전례 없이 중요한 사회개혁 의제들이 쟁점이 된 2011년 한 해였다. 물론 반값등록금, 무상급식과 보육지원 확대 등을 포함한 복지개혁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또 다른 중요한 의제도 있었다. 하나는 2011년 상반기 내내 논쟁이 됐던 재벌개혁 이슈다. 올해 초에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의 ‘초과이익 공유제’ 제안을 기폭제로 해서 일감 몰아주기 문제,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 부활 문제 들을 필두로 실로 오랜만에 재벌개혁이 우리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경제민주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일부에서 재벌개혁을 확산시키려고 했지만, 재벌들의 보이콧으로 동반성장위원회가 사실상 좌초하는 등 지속적인 힘을 얻지는 못했다.

하반기에 들어오면서 우리사회는 이른바 버핏세로 상징되는 ‘부자증세’가 사회개혁 이슈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는 복지재원 마련이라는 측면에서뿐 아니라 부를 독식해 온 1%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국내외적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적으로 재벌개혁에 대한 요구가 잠복해 있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부자증세가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국내 정치에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미국의 버핏세는 주로 근로소득자에 비해 투자소득자들의 세금이 낮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투자소득 과세 비율을 올려야 한다는 식으로 논의가 확대됐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포괄적인 부자증세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소득세·법인세·주식 양도세 모두에 걸쳐 증세 논의가 불붙은 것이다. 소득세에 대해 현행 과표구간 8천800만원 이상에 대해 35%의 세금을 부과하는 체계를 수정하고 1억5천만원 이상 구간을 새로 만들어 40% 과세를 하자는 주장이 그 예다.



또한 법인세에 대해서는 현행 과표구간 2억원 이상에 대해 22%의 세금을 부과하던 것을 바꿔 영업이익 500억원 또는 1천억원 이상의 구간을 신설하고 여기에 25~30%의 세금을 부과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금융과세에 대해서는 면세 혜택을 주고 있는 파생상품시장에 대해 주식시장과 마찬가지로 거래세를 부과하는 동시에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부동산 거래와 마찬가지로 과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이다.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부자증세 분위기로 인해 이명박 정부는 당초 소득세와 법인세 추가 감세 계획을 일단 철회했다. 그 후 증세를 일관되게 주장해 온 민주노동당은 물론 민주당까지 소득세와 법인세, 금융 양도차익에 대한 증세를 주장했고 심지어는 여당 일부에서도 증세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복지논쟁이 본격적인 부자증세 논쟁으로 확산되면서 최소한의 증세가 실현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적어도 부자증세의 2011년 판 결론은 허탈하다. 지난 2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합의된 결과는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 무산, 법인세는 과표구간 2~200억원 사이는 예정대로 20%로 감세, 200억원 이상에 대해서만 현행 22% 유지였다. 최소한의 증세는 고사하고 일부는 예정대로 추가 감세까지 한 것이다. 하반기 한나라당을 포함한 정치권의 무성한 부자증세 논의가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지금 시점에서 한국과 세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부자증세 논쟁은 단순히 ‘공평 과세’ 차원이나 ‘복지재원 마련’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지난 30년 동안 작은 정부를 주창하면서 가파르게 감세기조를 이끌어 왔던 신자유주의 정책 실패를 반전시켜야 한다는 역사성을 담고 있다.
전 세계는 자유주의 금융시장 실패로 인한 엄청난 경제추락을 막기 위해 국가재정 투입으로 경기회복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감세로 인해 재정여력이 바닥난 상태다. 우리나라도 규제완화와 감세로 대기업이 성장하면 국민생활이 개선될 것이라던 적하효과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감세의 철학도, 현실적인 효과도 모두 잘못됐다는 얘기다.

부자증세는 1%대 99%로 양극화를 구조화시켜 왔던 신자유주의 소득불평등 구조를 국가의 재분배를 통해 완화한다는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99%에서 1%로 집중된 부와 99%의 소득정체는 현재 경제위기를 고착시키는 최대의 원인이기도 하며 전 세계에서 실업과 불평등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을 일으키는 핵심 요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사회적 재부가 노동에서 기업으로, 재벌 대기업으로 편중돼 왔다는 점에서 법인세 증세는 재벌의 사회적 책임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보수세력이 부자증세에 대해 ‘세금폭탄’이라면서 국민을 현혹할 시기는 지났다는 것이다.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높아지면 질수록, 재벌개혁 요구가 커지면 질수록 부자증세 요구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될 것이다. 2012년 선거 공간에서도 “국민에게 복지를, 부자에게 증세를”이라는 구호는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될 것이다. 부자증세를 둘러싼 논쟁은 2011년 12월27일 종결된 것이 아니다. 새해 시작과 함께 2012년에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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