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잠 못 자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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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경제와 세상]잠 못 자는 대한민국

by eKHonomy 2011. 12. 28.

최배근 | 건국대 교수·경제학


한해를 보내며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 하나는 홀가분함이다. 내게는 MB 정권이 올해로 사실상 끝난 거나 다름 없다. MB 정권에 더 이상 기대할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올해 첫 국무회의에서 ‘물가와의 전쟁’을 언급하며 서민을 걱정하더니, 3개월 후에는 물가를 극복하려면 소비를 줄이는 길밖에 없다며 물가 안정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긴 게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던가.

2008~2010년의 MB 정권 3년간 근로소득자의 연봉은 줄고 물가는 오르다보니 3년간 실질 구매력이 11%나 감소했다. 올해 들어서도 9월까지 3.5% 줄었다. 갈수록 가난해지는 국민에게 소비를 줄이라는 정권에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물가 안정을 책임진 한국은행장에 “통화정책 방향 선택은 대통령의 몫”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앉힐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시장과 언론 등도 현 정권에 더는 기대하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다음 정부에 부담 주는 일을 더 이상 벌이지 않기만 바라는 분위기다.

또 하나의 마음은 우려감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 청년들 걱정에 잠이 안 온다는 대통령에게 청년들은 대통령 때문에 잠을 못 잔다 하고, 서민들 역시 삶이 너무 힘들어 잠을 못 이룬다. 우리 경제와 사회는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이 어려움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나는 얼마 전까지 한국 경제의 침몰 가능성을 50%로 보았다. 우리 사회가 노력하기에 따라 새해에는 그 가능성을 50% 밑으로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50% 이상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다음 정부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정치지도자들에게 비전을 확인할 수 없고, 능력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MB가 e메일 연하장을 통해 갈수록 힘들어지는 중산층의 삶과 서민 생활을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어서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단다. 이 고백은 ‘줄·푸·세’로 7·4·7을 달성하고 30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던 MB 정권의 무능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상대였던 박근혜 의원의 공약을 MB가 자신의 공약으로 받아들였던 ‘줄·푸·세’는 “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바로 세워” 서민과 중산층을 잘살게 해주겠다는 논리였다. 세금 줄이고 규제는 확실하게 풀어주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로 투자와 소득과 고용 증가율이 줄어들었고, 대다수 국민의 삶은 궁핍해졌다.
나는 MB 정권이 경제를 살리려는 의지가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실력 부족과 자신들의 무지를 몰랐다는 사실이다. MB 정부는 지난 30년간 시행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세계적으로 파산한 시점에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파산한 논리를 그대로 답습했다. 민심 이반, 물가대란과 전세대란 등은 예고된 결과였다. 역사적으로 실패가 입증된 논리에 집착한 결과 한국 경제는 모든 게 엉망이 되었고, 체질은 매우 취약해졌다. 물가와 전세대란 그리고 가계부채 등에 속수무책이었던 이유다.

현재 선진국의 경기 둔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한다. 이를 일시적 현상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금융위기에서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선진국 경제가 최소한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수출의존적 성장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대외환경 악화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 침체의 결합이 만들어낼 ‘내수 붕괴’라는 꼬리리스크다.

MB 정권이 양극화가 시대 추세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보니 중산층과 서민에게 빚을 내 가라앉는 소득을 보충하라고 장려한 결과다. ‘내수 붕괴 쓰나미’는 한국 경제를 침몰시킬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다음 정부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정치지도자들에게 해결능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의 심각성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경제정의가 실종되면서 사회는 분열되고 ‘제로섬 정치’에 갇힌 정치리스크가 고조되고 있다.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여의도와 청와대 장악에만 골몰하는 이들로 인해 국민은 잠을 못 이룬다. 정치지도자의 의지와 실력 구분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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