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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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경제와 세상]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실패

by eKHonomy 2012. 1. 4.
[경제와 세상]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실패
 


강수돌 | 고려대 교수·경영학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으되, 사회적으로 실패한 나라로 우리는 대개 일본을 떠올린다. 나라로서는 부국이지만 개인들은 힘들다는 것이다. 다 맞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틀리지도 않다. 일본만 그런 게 아니다.
최강대국인 미국은 어떤가? 미국은 단일 국가로는 세계 최대의 생산액을 자랑하며 아직도 달러가 세계 기준이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차별도 심하다. 물론 평균적으로는 한국보다 낫겠지만.

대체로 복지국가의 모범이라 하는 유럽은 어떤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별 걱정이 없는 나라들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나라들조차 사회적 실패가 있다.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회 곳곳에서 저임금, 장시간, 무권리, 비정규 노동을 수행한다. 대개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분야다. 이들은 고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 목숨을 걸고 이주한 사람들이다. 국내의 기득권 세력이나 해외의 초국적 자본이 경제 성공을 위해 사회경제적 공동체를 파괴한 결과다. 그 중 일부는 출세 가도를 달리지만 대부분은 탈락자가 되어 해외 이주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해마다 세계적으로 수백만의 이주민이 흐른다.
다른 한편으로, 독일·프랑스·영국·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은 미국처럼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분쟁 지역에 고가의 무기를 팔아 막대한 이익을 올리면서 동시에 천연자원도 통제한다. 다른 나라의 전쟁과 파괴를 대가로 자기들만의 성공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실패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제아무리 유엔이 바쁘게 움직여도 세계 평화는 없다.

이제 시야를 한국에 맞춰 보자. ‘한강의 기적’이라며 자랑하던 경제적 성취, 서양 여러 나라들이 수백년에 걸쳐 이룬 것을 한국은 불과 수십년 만에 이뤘다고 자랑했던 우리의 실상은 어떤가?
바로 그 고도의 경제성장 밑바닥에는 저임금, 장시간, 무권리 노동에 시달린 수많은 여성 및 남성 노동자들이 있으며, 개발독재와 군사 권위주의에 맞서 자유와 평등, 민주를 부르짖다 ‘죽도록’ 고문당한 김근태 같은 수많은 민주투사들이 있다. 
 
21세기, 지금도 ‘선진국 타령’만 하며 경제적 성공에 중독된 나머지 사회적 실패는 여전히 계속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 편하게 키우기 어려운 사회적 조건 때문에 출산율은 세계 최저다.
아기를 낳아도 태산이다. 영어를 잘해야 취업도 잘하고 출세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세 살 먹은 아이의 혀 아래 근육을 수술한 얘기는 해외토픽 감이었다.
사회적 실패로 10대가 매년 300명 정도 자살한다. 진리탐구라는 고상한 이상은 물론, 취업 통로라는 실용적 목적조차 잘 통하지 않는 대학을 위해 중·고교 시절을 ‘죽어’ 지내야 하는 청소년들은 부모와 부단히 갈등한다. 모두 성공만 중시한 나머지 행복을 놓친다.

최근 자살 행렬의 배경인 ‘왕따’도 결국은 사회적 붕괴의 한 결과다. 어렵사리 취업한 직장도 극소수는 줄을 잘 타 높이 오르나, 대부분은 줄이 없거나 ‘유리 천장’에 막혀 좌절한다. 그나마 쫓겨나지 않기 위한 눈치 경쟁에 인간성이 유린된다. 실업의 유령이 온 사회를 옥죈다. 교직조차 관료적 권위주의나 승진 경쟁주의로 말미암아 교사들 사이는 물론 교사와 학생 간 관계가 붕괴된 지 오래다. 정말 아이들을 사랑해 참으로 인간다운 교육을 하고 싶어 성실히 일하는 선생은 주변화된다.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실패의 이중성을 극복하는 길은 있다. 삶을 총체적으로 보는 것이다. 오직 한 곳만 보고 죽도록 뛰는 맹목성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게 첫걸음이다. 더디더라도 개인의 자율성과 사회의 공동체성을 같이 살려낼 문화와 풍토를 키워야 한다.
겉으로 번듯하진 않되, 진심을 다해 곳곳에서 노력하는 이들의 기를 살려야 한다. 눈치와 요령, 부패와 야합이 발을 붙여선 안된다. 자본과 권력에 병들지 않고, 민주와 생명의 가치를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리는 이들을 사회의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이들을 떠받드는 사회엔 희망이 있다. 2012년, 이런 희망의 싹들이 곳곳에서 용솟음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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