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한·미 FTA, 결국 독배를 마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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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아침을 열며]한·미 FTA, 결국 독배를 마시는가

by eKHonomy 2012. 1. 9.
김종훈 경제부장 

 

한미 FTA반대 시위대들이 을지로 일대 차도를 행진하고 있다. l 출처 경향DB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될 판이다. 아파하는 10대, 한우 파동, 부도덕성으로 휘청대는 정권, 돈봉투에 범벅이 된 한나라당 등 ‘다이내믹(dynamic) 코리아’는 들끓던 반대여론도 깔끔하게 잠재웠다. 정부가 이 틈을 놓칠 리 없다. 이르면 2월 초부터 한·미 간 관세장벽은 단계적으로 허물어지고 장기적으로 ‘무관세시대’가 열린다. 한·미 양국 정부가 ‘국내 준비가 완료됐다’는 서한만 교환하면 당장이라도 FTA는 효력을 지니게 된다.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한국은 넓어진 경제영토만큼이나 미국·유럽연합(EU) 등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정부와 일부 가진 사람들은 ‘일방통행식 낙관론’을 펴지만, 한·미 FTA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결코 득될 게 없는 ‘독배’다. 마시면 죽을 수도 있는데 이를 들이키려 하고 있다.

한·미 FTA 찬성론자들은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산다. 미국과 FTA를 체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은 FTA 없이도 수출을 잘해왔다. 이들은 또 “이제 와서 FTA 안한다고 하면 세계시장에서 ‘미아’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억지다. 세계무역기구(WTO)라는 다자 간 틀이 존재하고, 한국은 이 틀 내에서 자유로운 무역활동을 해왔다.

 
한·미 FTA를 발효해서는 안되는 첫번째 이유는 불확실한 이익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대미 흑자가 매년 1억4000만달러씩 늘어나고, 국내총생산(GDP)은 5.66% 증가하고, 일자리 35만개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 국제무역위원회가 밝힌 내용을 보면, 미국의 대 한국 무역수지는 매년 40억달러씩 개선된다. 한국이 내세운 이익의 29배다. 나라마다 셈법이 달라 생긴 ‘우격다짐’이라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우려되는 것들은 열거하기조차 벅차다. 
흑자가 나도 이익은 중소기업이나 국민에게로 흐르지 않는다. 산업연구원의 2011년 보고서를 보면, 대기업의 이익은 계열 협력업체에만 집중된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계열사인 현대모비스가 계열사 영업이익의 80%를 챙긴 반면 2차 부품업체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02년 6.6%에서 7년 뒤 3.2%로 반토막 났다. 이익이 국민에게 돌아가지도 않는다. 한국의 분배구조는 양극화가 심화되는 형태다. 국민총소득에서 노동에 따른 소득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은 2006년 61.3%에서 2010년 말 59.2%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3월 현재 한국 국민 상위 20%의 자산은 1년 전보다 평균 6억5281만원으로 3.2% 늘었다. 그 사이 하위 20%의 평균자산은 1억846만원으로 2.6% 줄었다.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임금 등을 고려할 때 미국 기업이 한국에 공장을 지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FTA 수혜기업인 현대·기아차가 지난 16년간 국내에 신·증설한 공장은 단 한 채도 없다. 반면 미국, 중국, 체코, 슬로바키아, 인도, 터키, 러시아 등에 공장을 세웠다. 한국 내에 공장을 짓지 않는다면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상대는 미국으로 GDP가 한국의 16배가 넘는 국가경쟁력 세계 1위 국가다. 권투로 치자면 라이트급 선수가 슈퍼헤비급 선수에게 대드는 꼴이다. 당장은 정보기술(IT), 자동차 등에서 앞설지 모르지만, 장기전에선 버거운 상대다. 1994년 미국과 북미 FTA를 체결한 멕시코에선 노동소득분배율 하락과 함께 체결 후 10년간 8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한국은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한 상황인데, 미국과 같은 출발선에서 뛰면 승리는 거의 불가능하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선진국과 FTA를 하면 장기적으로는 후진국이 100% 손해다. 새롭게 등장할 산업은 선진국 기업의 경쟁력에 밀려 싹도 트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역설적으로 지금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반도체와 자동차는 옛 정부의 보호 속에서 자랐지, FTA체제였다면 지금의 삼성전자·현재자동차는 탄생조차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FTA의 또 다른 폐단은 ‘권력’을 시장에 넘겨준다는 점이다. 한·미 FTA는 단순히 관세를 없애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비스 및 투자의 자유화까지 보장한다. 시장에 권력을 넘겨준 신자유주의가 실패한 상황에서 FTA를 하자는 것은 역사를 거꾸로 가겠다는 행태의 다름아니다. FTA는 한번 맺으면 래칫(역진방지) 조항에 따라 되돌리기도 어렵다. 시장으로 권력이 넘어가면서 한국 정부가 펴는 정책은 사안에 따라 무력화될 가능성도 높다. 서민을 위한 공공정책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정부는 “다 막아놨다”고 장담하지만, 협정문에는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인 때와 같은 드문 상황’일 경우 시장(투자자)은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한에 서명을 안하면 한·미 FTA는 없던 일이 된다. 서한을 이미 보냈다면 ‘폐기 서한’을 다시 보내면 된다. 그러면 180일 뒤 무서움·두려움을 주는 한·미 FTA를 쓰레기통에 처박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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