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축산농가와 정부의 치킨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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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시론]축산농가와 정부의 치킨게임

by eKHonomy 2012. 1. 9.
 박상표 | 국민건강수의사연대 정책국장 

소값 폭락의 해법을 둘러싸고 축산농가와 정부가 극단적인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축산농가는 정부에서 소 30만마리를 수매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축산업계의 요구대로 수매를 할 경우 2년 후에 소값 폭등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시장기능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오히려 정부는 소값 폭락을 축산업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반기고 있다. 수매를 둘러싼 치킨게임과 달리 정부와 축산업계가 서로 일치하는 소값 폭락 해법은 쇠고기 소비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히려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먹고 있다. 1970년만 하더라도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소비하는 쇠고기는 1.2㎏ 남짓이었으나, 2010년에는 8.8㎏을 먹어 치웠다. 40년 동안 인구는 1.5배 증가했으나 쇠고기 소비량은 무려 7배나 늘어났다. 앞으로 소비량을 늘리기보다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인식 전환을 하지 않으면 값싼 수입 쇠고기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소값이 폭락한 근본 원인은 축산농가와 정부가 모두 인정하고 있듯이 사육두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 쇠고기 수입이 중단되자 한우값이 올랐고 너도나도 소를 길렀다. 2002년에는 135만마리였으나 지금은 300만마리나 된다. 8~9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후 2008년 일시적으로 값이 떨어졌지만, 졸속적 쇠고기 협상에 분노한 촛불시위가 일어난 다음에 다시 가격이 올랐다. 정부의 잘못으로 인해 2008년에 가격 하락으로 공급이 조절될 기회를 놓친 것이다.

물론 농민의 책임도 없지는 않다. 2008년 이후 사육두수가 늘어 소값 폭락이 우려된다는 경고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그럼에도 농가들은 암소를 계속 사들였다. 송아지 값이 떨어진 만큼 정부가 돈을 대주는 송아지 생산안정제가 되레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 2008년 이후 세계 경제위기로 소비가 둔화되기 시작했고, 기름과 곡물 값이 올라서 사료값이 상승했지만 농가들은 사육두수를 줄이지 않았다. 한우 가격이 곧바로 하락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한우 가격은 2008년 한 마리에 450만원까지 떨어졌으나 2009년 610만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농가의 도덕적 해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의 농업포기 정책이다. 미국, 호주, 캐나다, 유럽연합(EU) 등과 무차별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면서 농민들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았다. 미국산과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량이 2003년 수준을 회복하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축산농가의 몰락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보험사에 21조원, 우리금융지주에 12조7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다. 부동산 투기로 망할 지경에 놓인 저축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도 5조4000억원이 넘는다. 이들 금융회사는 500억원이 넘는 손실이 났어도 제멋대로 수십억원을 배당하고, 임직원들의 월급을 무더기로 올려줬다. 
 
 

한국낙농육우협회 대표자들이 소값 폭락 대책 요구중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ㅣ 출처 경향DB


축산업의 위기 해소를 시장에 맡기겠다는 것은 스스로 정부의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자백에 불과하다. 농업은 식량안보 또는 식량주권, 환경보호, 농촌 지역사회 유지 등을 위해 정부의 보조가 필수적인 분야다. 세계 어디에도 농업을 탐욕스럽고 야만적인 시장에만 맡겨두는 나라는 없다. 

현재 위기에 빠진 축산농가들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소를 키울 농민이 사라진 다음에는 아무리 좋은 근본적 대책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다만 대규모 기업농들이 대부분의 공적자금 수혜를 받는 방식은 곤란하다. 생태, 환경, 동물복지를 고려한 사육방식 전환을 전제로 소규모 농가들을 우선적으로 구제해주는 것이 아주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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