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논단]KTX 경쟁 도입의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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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경향논단]KTX 경쟁 도입의 허구

by eKHonomy 2012. 1. 11.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硏 연구실장 

올해 국토해양부 대통령 업무보고에 KTX 민영화가 포함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현실성 없는 추측일 것이라 생각했다. 2005년 한국철도공사가 출범할 때 오랜 논쟁을 거쳐 KTX는 일반철도와 통합운영하기로 결론이 났었고, 유일한 흑자노선인 KTX만 떼어낼 경우 철도공사의 유지가 불가능하며, 무엇보다 국민들이 알짜배기 노선의 특혜 분양에 비판적일 텐데 청와대가 임기 마지막 해 그것도 대통령선거 해에 이를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게 판단 근거였다.

그런데 지금 KTX 민영화가 초스피드로 달려가고 있다. 현행 서울역, 용산역발 KTX는 철도공사가 운영하지만 2015년에 개통될 수서역발 KTX는 민간사업자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달에 사업 제안 요청서를 공개하고 올해 상반기까지 사업자를 선정할 방침이다. 과거에 철도민영화를 추진했던 관료들이 철도부서에 전면 배치됐고, 민간사업자 후보로 거론되는 동부건설, 두산건설, 금호건설 중 철도공사 고위간부를 영입한 한 회사가 이미 유력하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비판 여론이 부상하자 정부가 최근 내놓은 보도자료 제목이 “KTX 경쟁도입을 민영화라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름”이다. 계획대로 일을 강행하겠지만 그 일이 민영화는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KTX 시설은 국가가 계속 소유하고 운영권만 민간에게 주는 것이므로 이는 ‘경쟁 도입’일 뿐 이를 민영화라고 부르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오히려 반박한다. 국민들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해명이지만, 이는 민영화에 대한 기초 이해도 없는 관료들이 국가기간시설을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궤변이다. 

민영화는 기존 공공서비스가 민간사업자에 의해 수익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공기업 지분을 파는 방식도 있고 정부가 시설은 소유하되 운영권만 불하하는 방식도 있다. 과거에는 지분 매각이 주를 이루었으나 근래에는 운영권을 넘기는 방식이 국제적 흐름이다. 특히 철도산업은 국가핵심시설로 간주되어 민영화되는 경우가 많지 않고 민영화되더라도 선로 시설을 제외하고 운영권만 불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 민영화 사례인 영국 철도도 시설은 국가가 소유하고 운영권만 민간회사에 넘겨져 있는데, 모두가 이를 민영화라고 부른다. 

한편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KTX 경쟁 도입’은 얼마나 근거가 있는 것일까? 철도는 표준 기술을 토대로 선로 위를 다니는 교통서비스여서 동일 요금으로 동일 선로를 다니는 두 개 회사 열차가 이용자에게는 의미 있는 차이로 다가오지 않는다. 열차 색깔, 승무원 서비스의 차별화가 가능하겠지만 이것으로 인한 경쟁 효과는 미미하다. 두 회사를 가르는 실질적 요인은 출발역 접근성이나 출발 시간대 차이인데, 이는 두 회사의 경쟁 노력과 무관하게 지리적으로 혹은 운영계획표에 따라 사전에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철도선진국인 유럽에서 장거리 철도는 공기업 또는 국유회사에 의해 하나로 운영되고 있다. 애초 경쟁이 가능치 않은 곳에서 공연히 민간사업자에게 수익을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출처 : 경향db



경쟁은 도입하되 민영화는 아니라고? 정반대이다. 운영회사 차이로 인한 경쟁 효과는 발생하기 어렵고 반면 KTX가 민간사업자의 수익 대상으로 전락하는 민영화는 분명하다. 그래도 경쟁을 보고 싶다고? KTX에 적용되는 실제 경쟁은 부산을 향해 가는 고속버스, 중저가 항공 사이에서 벌어지며 이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왜 이리 무리한 일을 서두를까? 향후 수도권 교통 허브가 될 수서역발 KTX 민영화는 황금수익을 보장받을 특혜 중 특혜로 꼽힌다. 후보로 거명되는 회사들이 모두 토목자본이다. 4대강사업만으로는 배가 부르지 않은 모양이다. KTX가 임기 말년 정권의 사유물이 될 수는 없다. 정부의 민간사업자 선정 절차를 중단시켜야 하고 4월 총선에서는 KTX 민영화 철회를 못 박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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