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유훈통치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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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경제와 세상]유훈통치를 넘어

by eKHonomy 2012. 1. 18.
 최배근 | 건국대 교수·경제학 

그동안 우리가 의지해온 지적 체계와 세계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익숙했던 패러다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대변환의 시기에 살고 있다. 더 이상 20세기의 패러다임이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준 글로벌 금융위기는 대변환의 화룡정점이었다. 20세기의 경제를 지배했던 미국과 일본 패러다임이 붕괴되었고, 미국 패러다임에 맞서기 위해 만든 유로시스템이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리더십의 구조적 약화로 2차 대전 이후 창출된 세계질서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즉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서울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l 출처 경향DB


그런데 2012년의 한반도는 유훈통치가 지배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시중에 회자되고 있다. 북한만의 유훈통치가 아니라는 얘기다. 북한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통치를 하고 있듯이, 올해 양대 선거를 맞이한 남한에서도 박정희와 김대중과 노무현이 부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에서 유훈통치가 실현된다면 남북한과 한반도 모두 20세기에 갇히게 된다. 한국 사회는 미국과 일본 시스템이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된 공간이고, 한반도와 동북아는 미국 리더십에 기초한 2차 대전 이후의 세계질서 중에 가장 도전 받는 곳이라는 점에서 대변환의 중심에 있다. 한국 사회와 한반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이는 한국 사회와 한반도가 인류세계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야 할 책임을 가진 곳임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서 전면적 체제 전환에 대한 요구가 증대하고 있는 시대배경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시대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과제는 자명하다. 첫째, 세계 주요 국가들의 공통 핵심과제인, ‘괜찮은’ 청년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확실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청년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청년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지속성장의 첩경이자 고령화가 야기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법이다. 심지어 미국이 세계질서의 유지를 위한 리더십을 지속할 수 있는가도 미국 경제의 장기적 성공을 결정할 청년일자리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청년일자리는 지속성장, 가계부채와 주택경기의 연착륙, 양극화 해소, 복지재원 마련 등 모든 문제의 핵심고리다. ‘다함께 성장’ 패러다임은 서구 사회에서 이미 30년 전에 사망하였고, 교육과 금융 인프라 등은 청년일자리 만들기를 더 이상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성장주의’는 무책임과 무능의 극치다. 양극화 해소와 복지 역시 괜찮은 청년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한 근본적 해결이 어렵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괜찮은 청년일자리를 만들려면 교육과 금융 인프라 등 한국 사회의 판을 총체적으로 새롭게 짜야 한다.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서구와 일본의 경험을 관성적으로 되풀이하지 않는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둘째, 남북체제가 공진화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시해야 한다. 중국의 부상으로 동북아의 주요 이해당사국들은 경쟁 속에 협력을 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결과 미군의 ‘안보 우산’이 영속할 것으로 가정하거나 미·중 간 경쟁의 측면만을 바라보는 냉전반공 인식은 유효성을 상실해가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한반도를 새로운 분단구조로 밀어 넣고 있다. 동북아 주요 이해당사국들 간 협력 강화에 따라 남북 간 협력의 강화도 불가피하다. 

북한의 불안정성을 자신의 안정을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중국의 부상과 동북아에서 협력의 강화가 한반도를 새로운 분단구조로 밀어 넣는 것을 막으려면 남북체제의 공진화를 통해 남북한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북한체제의 변화와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한반도 주변국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남한체제의 진화 역시 불가피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남북체제의 공진화에 대한 상상력이 매우 빈곤하다. 이상의 두 가지 과제에 대한 구체적 해결책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한국 사회와 한반도는 유감스럽게도 유훈통치의 프레임에 갇힐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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