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저축은행 사태의 하이에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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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아침을 열며] 저축은행 사태의 하이에나들

by eKHonomy 2011. 6. 5.
박용채 | 경제에디터


‘소가 웃을 일’들이 이렇게 빈발할 거라곤 예상도 못했다. 그것도 백주에 권력 한복판에서.

궁금했던 김황식 국무총리의 해명부터 보자. 그는 지난해 감사원장 재직 시 저축은행 감사를 하는데 ‘오만 군데서 압력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국회 답변에서 압력을 가한 자에 대해 “김종창 전 금감원장의 면담 요청이나 저축은행에 종사한 친척이 전화로 항의한 사실은 있지만 권력기관이나 여야 정치인은 없다”고 말했다. 오만 군데는 “감사에 저항하는 그룹이나 세력이 행하는 일체의 어필 또는 청탁을 포괄한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현란한 수사였지만 친척의 항의를 압력의 대상에 얹어야 할 정도로 군색했다. ‘그렇게밖에 말 못하는 처지를 이해해달라’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입만 벙긋하면 모두 다친다’는 경고일까.

정치권의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방안 합의에 대한 검찰의 대응을 보면 이런 치기(稚氣)가 또 없다. ‘입맛이 돌아오니 쌀이 떨어졌다’는 검찰 특유의 수사법이 나왔다. ‘전쟁 중인 장수의 목을 쳤다’는 직설적 표현도 등장했다. 정치권은 이미 지난 4월 중수부 폐지에 잠정합의한 상태다. 그러자 검찰은 부산저축은행건을 이례적으로 중수부에 배당하고 수사에 올인해왔다.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였다. 

검찰의 이번 반응은 국회의 잠정합의를 인정치 않겠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검찰 수사가 탄력을 받으면서 잠정합의는 무위가 될 것이라고 여겼을 법하다. 하지만 중수부 존립을 강조하려면 격렬하게 항의하는 것보다 더욱 철저하게 수사하는 게 옳다. 

정치로 옮겨가면 사생결단식 싸움이다. ‘전 정권 때의 문제’ ‘무슨 소리, 현 정권의 문제’라는 네 탓 공방은 넌덜머리가 날 정도니 넘어가자. 정작 관전 포인트는 내년 대선을 앞둔 여권 내부의 힘겨루기다. 때마침 친이 직계들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재오 특임장관도 거들었다. “저축은행 책임을 전·현 정권에 공정하게 물어야 한다. 부실을 알고도 방치한 현 정권 관련자가 있다면 그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 지당한 말이지만 이상득 의원 연루설, 박근혜 전 대표의 동생인 박지만씨의 연관설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터져나오는 상황이어서 예사롭지 않다. 

사태의 진원지로 초토화된 금융당국에서도 미묘한 신경전이 한창이다. 저축은행 검사 등을 담당했던 금감원 간부들은 수뢰 등의 혐의로 줄줄이 구속됐다. 김종창 당시 금감원장은 비리백화점으로 거론되며 융단폭격을 맞고 있다. 

의아스러운 대목은 저축은행을 총괄했던 김장호 전 부원장보의 행보다. 그는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수수 의혹이 제기되자 사퇴했다. 하지만 후속은 없다. 그는 저축은행 사태 발생 뒤 권혁세 금감원장의 대대적인 징계인사에서도 유임됐던 인물이다. 현 정권 들어 승승장구했으며 권 원장과는 특별한 지연과 학맥을 갖고 있다. 반면 김석동 금융위원장 사람으로 분류되는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은 전격 구속됐다. 한나라당 전문위원 시절 부산저축은행그룹 측으로부터 퇴출을 막아달라는 청탁을 받고 4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다. 구체적 내용이야 검찰 조사에서 나오겠지만 금융권에서는 그의 혐의에 고개를 갸웃한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는 오래된 격언이다. 허점을 틈타 상대를 제압하는 것 역시 기초적 생존법이다. 하물며 국가를 뒤흔들고 있는 사태 뒤편에서 기회를 엿보는 것쯤이야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이들에게는 일도 아니다. 적을 쓰러뜨려야 내가 사는 살벌한 정글사회에서 국민의 눈가 귀가 집중하는 저축은행 사태는 아주 좋은 기회다. 이렇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뻔뻔함이라니…… 저축은행 사태를 빌미로 누군가를 쳐내려고 어슬렁거리는 것은 하이에나의 모습이다.

저축은행 사태에서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간단하다. 우선 사실 파악이다. 그런 뒤 벌할 사람 벌하고, 문제점을 고쳐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저축은행이 이 지경까지 되는 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저축은행이 덩치를 키우는 과정에서 전 정권과는 어떤 유착이 있었고 현 정권은 저축은행의 부실을 확인하고도 왜 처리를 미적댔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처리가 미뤄지면서 저축은행 대주주·경영진과 힘 있는 기관, 정치인 간의 은밀한 로비와 청탁이 이뤄졌다. 심처의 움직임을 알 리 없는 애꿎은 서민들만 폭탄돌리기의 희생양이 됐다.

정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밝히면 된다. 뭐가 잘못됐는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그 판단은 국민이 한다. 본질은 없어지고 곁가지만 나부끼는 상황이 지속되면 불신만 커지는 것은 불문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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