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현주의 굿 비즈니스, 굿 머니]일론 머스크와 1500만달러
본문 바로가기
온라인 경제칼럼

[제현주의 굿 비즈니스, 굿 머니]일론 머스크와 1500만달러

by eKHonomy 2019. 5. 17.

5월16일, 바로 어제, 한국 시간으로 오전 11시50분경, 일론 머스크가 단상에 올랐고 ‘킷킷스쿨(Kitkit School)’이라는 이름이 불렸다. 1000만달러, 우리 돈으로 약 120억원의 상금을 받게 될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대회의 우승자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킷킷스쿨은 에듀테크 스타트업 에누마(Enuma)가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이야기의 시작에는 에누마의 이수인 대표가 있다. 게임디자이너였던 이수인 대표는 아이가 태어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직업을 묻는 의사에게 ‘게임을 만든다’는 답을 하며 자신의 아이에게 도움 될 것 하나 없는 직업을 가졌다는 게 부끄럽다고 느끼는 순간, 의사가 “당신의 기술이 당신의 아이 같은 아이들에게 너무 필요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고, 거기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수인 대표는 게임 개발자인 남편과 함께 장애아동과 특수교육을 위한 게임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 조악함에 당황스러웠다. “건강한 성인이 한두 시간 노는 데 전 세계의 기술과 자원이 얼마나 투입되는지 아는 우리로서는 분노가 치밀었다”고 이수인 대표는 2017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에누마가 개발한 교육 소프트웨어 ‘킷킷스쿨’로 학습 중인 아이들. 킷킷스쿨 홈페이지


이수인 대표는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느꼈고, 결국 자신의 역량을 살려 게임이 접목된 교육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 ‘에누마’를 창업했다. 남편 이건호 CTO와 함께였다. 에누마의 첫 제품은 이수인 대표 자신의 아이처럼 오랫동안 집중하며 학습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게임처럼 손쉽게 수학 공부를 할 수 있는 앱 ‘토도수학’이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집중하기 어려운 아이에게 좋은 교육 프로그램은 모든 아이에게 좋다. 토도수학은 세계 각국의 앱스토어 및 구글플레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토도수학의 누적 다운로드 수는 500만회가 넘어가는데, 당연히 그중 대다수가 비장애 아동일 것이다. 어쩌면 토도수학을 내려받아준 부모 대부분은 토도수학이 장애아동을 위해 설계되고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이수인 대표는 토도수학을 보고 “장애아동을 위한 소프트웨어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곤 했다고 했다. 이수인 대표는 이렇게 반문한다. “장애아동을 위한 것은 어떻게 생겨야 하는데요?” 교육용 소프트웨어만일까.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좋은 것은 대체로 모든 사람에게 더 좋다. 


이수인 대표의 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에게 비장애 아동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교육 접근성을 주고 싶었던 엄마로서의 꿈은 모든 아이를 위한 마음으로 뻗어나갔다. 그 계기에 바로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대회가 있었다. 전 세계 3억명 가까운 아동이 기본적인 수학 능력과 문해 능력을 습득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기초적인 배움의 제약은 가능성의 제약으로 이어진다.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대회는 학교와 교사에게 접근할 수 없는 아이들이 6개월 안에 스스로 글을 읽고 셈을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교육 소프트웨어에 총 1500만달러의 상금을 내걸었다. 상금은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내놓았다. 세계 각국에서 출품된 소프트웨어 중 5개가 결선 진출자로 뽑혀 각 100만달러의 상금을 받고 탄자니아에서 15개월간 필드 테스트에 돌입했다. 이 기간 동안, 학교를 갈 수 없었던 3000명의 아이가 5개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읽고 셈하기를 배웠다. 그리고 필드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 결과가 발표되었다. 에누마와 영국·케냐에 기반을 둔 비영리조직 ‘원빌리언’의 공동우승이었다.


결과 발표가 있기 전날, 이수인 대표는 투자자 모두에게 메일을 보냈다(에누마는 이제까지 총 100억원가량의 투자를 받았다. 투자자 중에는 필자가 몸담고 있는 옐로우독이나 HG이니셔티브와 같은 임팩트 투자사도, 소프트뱅크 벤처스나 DSC와 같은 일반 벤처캐피털도 있다. 에누마의 제품이 말 그대로 ‘모두’를 위해 좋은 제품이며 따라서 시장이 그것을 알아볼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메일에는 에누마뿐만 아니라 다른 결선 진출자 4곳까지, 5개 소프트웨어 모두가 탄자니아의 아이들에게 뚜렷한 효과를 발휘했다고 적혀 있었다. 학교가 없는 마을 150여곳의 아이 3000명이 5개 중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학습했고, 아이들 다수의 학습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이야기였다. 1000만달러의 상금이 어디로 가느냐와 상관 없이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대회의 성과는 이미 그것으로 충분히 확인된 셈이다. 3000명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돌아갔고, 이제 중요한 것은 그 3000명을 300만명으로, 3억명으로 만드는 일이다. 에누마와 원빌리언이 그 일을 꿋꿋이 해나갈 것이다.


이수인 대표는 2017년의 같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부자 동네 아이들은 교육 도구가 좀 허술해도 괜찮다. 엄마가 책 읽어주고, 경험하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아이들은 태블릿PC가 장난감, 엄마, 교사 역할까지 해야 한다. 아무런 보조 수단이 없을 때는 교육용 앱의 품질이 좋아야 한다.”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만든다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만들게 되는 셈이다. 에누마의 킷킷스쿨은 당연히 선진국의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 수단일 것이 틀림없다. 토도수학이 비장애 아동에게 그런 것처럼.


이수인 대표를 만날 때마다 그의 꿈이 이루어진 세상을 나도 상상하게 된다. 물론 그 꿈으로 가는 길에는 시장의 현실이 있고 소비자와 마케팅이 있고 기존 교육 시스템의 이해관계자들이 있다. 그래서 꿈은 전략이 되고 계획이 되면서 때로 모습을 바꾼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떤 돈은 그 꿈을 꿈 자체로 되짚어 볼 수 있는 행운을 준다.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대회에 쓰인 돈이야말로 바로 그런 행운을 준 굿 머니가 아닐까.


<제현주 임팩트 투자사 옐로우독 대표>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