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경제학’ 용어에 숨겨진 꼼수
본문 바로가기
온라인 경제칼럼

[경제와 세상]‘경제학’ 용어에 숨겨진 꼼수

by eKHonomy 2012. 2. 15.
강신준 | 동아대 교수·경제학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하고 나서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매우 자주 받았던 질문이 이 책의 부제를 왜 ‘정치경제학 비판’이라고 하지 않고 ‘경제학 비판’으로 했느냐는 것이다. 하도 질문을 많이 받아서 대중적인 전달수단이 있으면 한 번 밝혀야겠다고 생각하던 문제인데 ‘정치경제학’과 ‘경제학’이라는 용어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마르크스가 살던 시기에는 경제학을 ‘political economy’로 불렀는데 오늘날에는 그것을 ‘economics’라고 부르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월스트리트에서 '실물경제 용해'라는 제목의 거대한 얼음 조각상이 녹아내리고 있다. l 출처 : 경향DB


우선 사실관계를 얘기하자면 후자의 용어는 알프레드 마셜이란 사람이 1890년에 임의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 이전에는 경제학의 이름이 전자의 것이었다. 마셜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낸 까닭은 경제학에서 가치판단의 문제를 배제하기 위함이었다. 18세기부터 눈부신 발전을 해오던 자본주의는 19세기 중반부터 그것이 만들어낸 모순, 즉 일하는 사람이 가난한 현상으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 이전의 경제학이 밝혀놓은 바에 따르면 모든 부는 인간의 노동이었다. 따라서 노동하는 사람이 가난한 이유는 그 부를 다른 사람, 즉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의 해결은 빼앗긴 부를 돌려주는 방법일 터인데, 이미 빼앗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것은 문제를 외면하는 방법뿐이다. 마셜은 용어를 바꾸어 경제학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림으로써 이 문제를 경제학이 외면하도록 하고자 한 것이다. ‘꼼수’의 원조였던 셈이다. 그러나 오리처럼 짚더미에 머리를 박고 현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꼼수’를 쓰는 오리의 꼬리를 잡아 다시 현실로 끌어내는 것이었고 경제학의 본명에 대한 추억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그와 함께 경제학의 과학적 진실, 즉 노동이 부의 원천이라는 점과 노동하는 사람이 가난한 이유도 함께 상기시킨다.

경제학과 정치경제학을 구별하는 것은 ‘꼼수’를 진실과 혼동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두 경제학은 서로 독립적인 별개의 과학이 아니라 단지 ‘진실’과 ‘꼼수’의 차이일 뿐인데 이를 서로 달리 부르는 것은 곧 ‘꼼수’의 의도처럼 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사실 우리는 오늘날 애덤 스미스를 정치경제학자라고 따로 부르지 않는다. 그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자본>의 부제를 ‘경제학 비판’으로 붙인 것은 이런 의문과 고민 끝에 내린 나름의 결정이었다. 독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그것을 통해서 경제적 진실에 눈을 돌리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셜의 전통을 이어받은 오늘날의 경제학 교과서들은 앞부분에 경제학과 경제정책을 구별하고,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은 가치판단, 소위 윤리적 규범을 개입시켜서는 안된다고 엄격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의 원조 격인 중상주의가 경제정책에서 출발했고 그 아버지 격인 애덤 스미스가 도덕론의 한 분야로 경제학을 다루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 경제학은 서로 다른 것인가?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는 ‘정치경제학’의 아버지가 되어야 하고 ‘경제학’의 아버지는 알프레드 마셜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최근 저축은행의 피해자 보상 관련 특별법 제정과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규제가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일탈적인 행보라는 지적이 많다. 이것들은 모두 경제 문제인데 정치와 경제 사이의 관련에 대해 외면하려는 마셜의 경제학에서는 이런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꼼수’의 치명적인 약점은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러나 물론 이 얘기는 마셜의 추종자들에게는 귀에 닿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이 얘기는 바로 마셜이 외면하려 했던 사람들, 즉 노동하는 사람들이자 부를 빼앗긴 사람들을 향한 것이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경제(학)’라는 용어 속에 ‘꼼수’와 ‘진실’이 동거하고 있으며 따라서 경제적 진실을 판별하는 수고가 따로 필요하다는 점을 이들에게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