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배근 | 건국대 교수·경제학
재벌의 탐욕과 오만에 국민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재벌의 탐욕과 오만에 국민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재벌 총수들은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이는 재벌의 위기를 의미한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보기에도 재벌이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재벌 총수는 사실상 헌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경유착을 넘어 재벌 총수가 지배하는 나라가 돼버렸고, 재벌 총수 앞에만 서면 국가기관의 태도가 작아진다”는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주장이 많은 국민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재벌시스템으로 한국에서는 사회적 대화가 무시된다’는 해외 언론의 지적은 MB 정부가 좋아하는 ‘국격’을 손상시킨다.
북한의 세습체제를 능가하는 세습지배구조, 조카며느리까지 기업을 확장하는 문어발식 족벌경영, 족벌기업 일감몰아주기 및 주가띄우기를 통한 경영권의 편법 상속, 비정규직 양산의 주범인 중소기업 쥐어짜기, 순대·두부 제조 등 영세 상인들의 업종에까지 손을 뻗치며 코 묻은 돈을 뜯어내는 골목대장, 서민경제를 파탄내면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탐욕에 찬 포식자…. 이것은 재벌해체론자의 주장이 아니라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지적이다.
이 지적에 따르면 재벌이야말로 ‘시장경제의 적’이요, 경제 윤리의 결핍자요, 서민경제의 파탄과 양극화의 ‘주범’이다. 중학생도 아는 시장경제와 경제 윤리를 재벌 총수만 모르는 것 같다.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는 불공정거래를 “거래 당사자 중 우월한 위치에 있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자유를 제한하여 부당한 방법으로 이익을 챙기는 행위”로 정의하며 공정한 경쟁을 ‘시장경제의 생명’이라 기술하고 있다. 또한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불법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경제 윤리’로 기술하고 있다.
친기업을 표방하는 여당에서조차 재벌기업이 온갖 편법과 불공정의 화신, 경제 윤리조차 결핍된 경제조직, 서민경제의 파탄과 양극화 심화의 주범,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장애물 등으로 인식될 정도면 재벌 총수는 반사회적·반국가적 존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재벌의 근본적 위기는 재벌(총수)에 대한 대다수 국민의 부정적 이미지보다는 자신의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재벌의 무감각에서 비롯한다.
“안방에서만 머물며 코 묻은 돈을 뜯어내는 골목대장”이 된 재벌 모습은 위기의 단면이다. 현재 한국경제는 제조업과 대기업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이 막을 내리면서 ‘일본병 함정’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글로벌 경제구조가 이미 오래 전부터 제조업의 공급과잉과 경쟁격화에 놓여있는 가운데, 재벌기업의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경제의 성장방식은 청년실업과 고용불안정, 낮은 결혼율과 저출산, 양극화와 내수약화라는 악순환 고리를 구조화시키고 있다.
재벌기업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생산 자동화, 임금 인상 억제 및 비정규직 노동력 사용 증대, 생산기지의 해외이전, 중소기업 쥐어짜기(경쟁 압력 전가) 등으로 대응하고 있고, 그 결과 괜찮은 일자리 공급의 둔화와 일자리의 단기화 그리고 고용 질의 악화 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가 ‘일본병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산업구조의 업그레이드가 시급하다. 일본경제가 80년대 후반에 산업체계의 전면 재검토를 놓치면서 ‘침체의 터널’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쌍생아인 재벌기업들 역시 주력 업종의 고부가가치화는 물론, 업종 교체까지 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재벌기업들의 전망은 솔직히 그리 밝지 않다.
현 단계 산업구조 업그레이드는 창의적 아이디어의 투입과 유기적으로 통합된 생태계의 구성에 달려 있는 반면, 제조업적 사고에 젖어 있는 재벌 총수들은 수직적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 재벌기업이 세대교체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3세대 경영자들은 문제해결에 대한 경영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역사가 보여주었듯이, 산업구조 조정은 사회역량의 결집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반사회적 존재로 전락한 재벌기업의 위기는 여기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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