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나눔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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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사유와 성찰] ‘나눔의 예술’

by eKHonomy 2011. 7. 14.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재벌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6월 말을 기준으로 국내 30대 재벌 총수 직계가족이 지난 1년 사이 주식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은 무려 13조원이라고 한다. 
대단하다는 경탄이 나오는 한편 여러 의문도 든다. 그중 하나가 재벌 집들은 그런 거액을 그 짧은 기간에 벌어 대체 어디에 쓸까 하는 것이다. 나라 경제는 내수 부진으로 불안정하다고 하는데, 그들의 씀씀이는 과연 그러한 걱정을 더는 데에 도움은 되는 걸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별로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위에 말한 재벌가족이래야 고작 118명인데, 그 적은 수의 사람이 써봐야 얼마나 많이 쓰겠는가. 설령 아주 열심히 쓴다고 해도 결국은 외제 상품이나 서비스의 구입이 그들 소비의 주 내용이 아니겠는가. 
내수 활성화에 상당히 기여할 큰돈이 나라 안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극소수 부자들에게 몰려 있으면 실제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분명하다. 

다른 상황을 상상해 보자. 5000만 (일반)한국인들이 각자 한 달 평균 2만원씩의 돈을 더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치자. 이는 연간 12조원어치의 막대한 소비가 새로 창출될 수 있는 상황임을 의미한다. 
일반시민들 특히 서민들은 돈 쓸 데가 늘 많은 터라 가처분소득이 늘면 그건 거의 소비증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커플이나 가족이 이 돈을 모아쓰면 2000만원짜리 자동차는 60만대, 200만원짜리 3DTV는 600만대, 그리고 60만원짜리 스마트폰은 연간 2000만대가 더 팔리게 된다. 소비가 매년 이 정도로 증가하면 생산도 그만큼 더 해야 하고 고용도 크게 늘려야 한다. 경제성장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13조원이 재벌가에 쌓여 있는 상황하고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재벌 개인으로 보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확실히 분배는 성장으로 이어진다. 나눠야 한다. 그래야 더 큰다. 그것이 바로 ‘나눔의 예술’이다. 복지의 중요성은 이 맥락에서도 부각된다. 분배정책으로서 복지처럼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린 중국과 일본을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이 이웃 나라들은 내수와 복지 중시 경제로의 전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2009년에 공표된 일본의 ‘제3 성장의 길’과 그 이듬해 발표된 중국의 ‘12·5 경제계획’은 공히 ‘내수 및 복지 성장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내수 확대 및 복지증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꾀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이렇게 나오고 있는 공통의 이유를 두 가지 꼽으라고 한다면, 하나는 외생적 문제인 미국 등 역외 수출시장의 축소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내생적 문제인 사회경제적 격차의 심화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사실 한국도 큰 문제로 직면하고 있는 것들이다. 
금융위기 이후 추세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역외 외수시장의 축소는 수출주도 성장전략으로 살아온 대표적 나라인 한국에야말로 중장기적으로 위협적인 환경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한편, 한국에서의 격차 혹은 양극화의 심화는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못지않게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한국도 하루빨리 1차분배구조를 개선하고 복지체계를 획기적으로 확충함으로써 일반시민들의 가처분소득을 늘리고 민간소비를 촉진해야 한다. 그래야 내수에 기반을 둔 안정적 경제성장 구조를 형성·유지해갈 수 있다.

다행히 정부가 최근 발표한 ‘2011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는 내수활성화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늦게나마 깨달아 좋은 목표를 설정하긴 했으나 그를 위한 정책 수단들은 무척이나 초라해 보인다. 
두루 알려진 바와 같이, 안정적인 내수진작을 위해선 무엇보다 중류 이하 저소득계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는 것이 중요하고, 그를 위해선 실업과 불공정 비정규직을 줄이고, 노동자의 실질임금과 중소상공인의 실수익을 올리며,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책들은 일반적으로 진보적인 정부가 채택하는 것들이다. 이명박 정부는 아무래도 이런 효과적인 내수 진작책을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대상자 확대 등의 몇 가지 최소한의 잔여주의적 복지정책을 제외하고는 내수 활성화를 위한 근본적이거나 실질적인 대책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실업, 비정규직, 중소상공인, 도시빈민 문제 등에 대하여 진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동시에 보편주의적 복지국가의 건설을 향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새 정부가 필요하다. 그러한 정부는 나눔의 예술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정부여야 한다. 
재벌을 포함한 기득권 계층에 대해서도 과감하고 당당하게 그 나눔의 미학을 설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정부라야 동북아를 향한 시대적 요청인 내수 및 복지 중시 경제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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