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사모펀드에 은행 넘긴 죄
본문 바로가기
온라인 경제칼럼

[마감 후…] 사모펀드에 은행 넘긴 죄

by eKHonomy 2011. 7. 21.
안호기|경제부 차장


과거 “기관에서 나왔다”고 하면 으레 정보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국내 은행은 대부분 민간기업임에도 ‘금융기관’이라고 불린다.
‘기관’ 용어는 정부 관련 기구에 붙는 게 보통이어서 생뚱맞게 들리기도 한다.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은행까지 기관이라고 부르는 것은 공적인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은행은 단순히 돈을 예치하고 빌리는 곳이 아니라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인체의 혈맥에 비유된다. 은행의 예금과 대출 과정에 수많은 개인과 기업의 사활이 달려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은행에는 일반 기업보다 강한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시늉에 그친다는 비판이 있지만 은행은 각종 공익사업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한다. 올해 하반기 고졸자에게 일부 취업문을 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은행에 대해 산업자본의 참여를 제한하고, 까다로운 감독규정을 만드는 등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각종 규제를 두고 있다.

최근 외환은행의 행태는 공공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 뒤에는 지분 51.02%를 가진 최대주주 론스타가 있다. 론스타는 이달 분기배당으로 4968억원을 받아갔다. 2003년 2조1548억원을 투자해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2006년 이후 지분 일부 매각과 배당을 통해 2조9027억원을 챙겼다.
외환은행 배당성향(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은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다. 하나금융지주와의 매각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론스타가 배당 챙기기를 가속화할 가능성은 크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보자. 외환은행 매각이 계속 지연된다. 투자자 수익 극대화가 목적인 사모펀드 론스타는 이익의 거의 대부분을 배당으로 챙겨간다. 투자를 위해 쌓아둔 잉여금까지 배당으로 싹쓸이하는 것도 가능하다. 외환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 4조원이 넘는 잉여금을 갖고 있다. 잉여금이 바닥나면 부동산과 유가증권 등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팔아 배당할 수도 있다.

영업력을 강화하는 데 써야 할 이익과 잉여금을 배당에 소진한 외환은행은 영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산까지 팔아치울 정도라면 인력 구조조정도 불가피하다. 결국 껍데기뿐인 은행으로 전락할 것은 뻔하다.
실제 외환은행의 예금과 대출은 최근 1년 새 2조원가량씩 줄었다. 다른 은행의 수신과 대출이 늘어나는 동안 나홀로 역주행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금융당국 수장들이 “예의주시하겠다”(김석동 금융위원장), “따져볼 문제”(권혁세 금융감독원장)라며 잇따라 고배당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러나 말 그대로 보기만 하는 데 그칠 수도 있다. 고배당은 론스타가 좌지우지하는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사안이고,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론스타로서는 어차피 한국을 벗어날 기회만 찾고 있어 금융당국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실체가 모호한 사모펀드에 외환은행을 넘긴 ‘원죄’ 탓이다.

민영화를 추진 중인 우리금융지주 입찰에 참여한 3곳은 모두 사모펀드다.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참여한 것이다. 은행산업 선진화 명분이 있지만 사모펀드 특성상 ‘살을 빼서(구조조정) 모양을 좋게 해 팔아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권에서는 국민주 공모 방식으로 우리금융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대안을 내놨다. 포퓰리즘적인 발상이다. 저소득층에게 일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정부의 발 아래 은행을 두겠다는 생각과 다르지 않다. 천천히 가더라도 우리금융이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