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마지막 카드마저 날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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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의 경제시평

‘양적완화’ 마지막 카드마저 날릴 건가

by eKHonomy 2016. 4. 12.

시중에 풀린 돈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지면 경제가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해 화폐 발행을 늘려왔다. 한은 통계를 보면 지난 2월 말 기준 시중에 공급한 화폐에서 환수한 금액을 제외한 화폐발행잔액은 90조7942억원으로 사상 처음 90조원을 넘어섰다. 시중 통화량(M2)은 지난해 말 2242조원으로 1년 새 8.2% 늘었다. 반면 지난해 돈의 주인이 몇번 바뀌었는지를 뜻하는 화폐 유통속도는 0.71에 그쳐 2002년 이후 가장 낮았다. 한은에서 공급한 돈이 대출과 상환을 반복하면서 몇 배의 통화를 창출했는지를 나타내는 통화승수도 사상 최저인 16.9로 떨어졌다.

화폐 유통속도가 떨어진 것은 국민소득 증가속도가 통화량이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시중에 통화량이 늘어도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미래를 불안하게 여긴 기업이 이익을 재투자하지 않고 유보한 결과이다. 일부 고소득층을 제외하고 소득이 정체한 대부분 가계 역시 부채를 상환하느라 소비할 여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2009년부터 발행된 5만원 고액권 상당액이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도 유통속도 하락을 초래한다. 시중에 풀린 돈이 대기업과 부유층 계좌에 묶여 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판 양적완화를 둘러싼 주요 발언 _경향DB


이 때문에 한은 발권력으로 시중에 돈을 푸는 ‘한국판 양적 완화’ 정책을 펴겠다며 새누리당이 한은법 개정을 20대 국회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것은 위험해 보인다. 경기 침체는 시중에 유동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는 사실은 여러 지표를 통해 확인된다. 앞으로도 유동성을 계속 늘린다면 자산 거품과 붕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중에 크게 늘어난 돈이 투자와 소비로 흘러들게 하는 정책이다. 시민이 소비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쓸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업에 각종 규제 완화 혜택을 준 만큼 이제는 가계소득을 높여 소비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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