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버블경제’ 이후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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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경제와 세상]‘버블경제’ 이후의 리더십

by eKHonomy 2016. 9. 1.

물고기 떼의 무리 이동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다. 수많은 물고기들이 때로는 구름처럼, 때로는 소용돌이처럼 푸른 바닷속을 서서히 움직인다. 그러다가 상어나 범고래 같은 포식자를 발견하면 일사불란하게 방향을 바꾼다. 대열이 흐트러졌다가도 순식간에 질서와 조화를 회복한다.

 

2005년 2월3일자 ‘네이처’ 커버스토리에는 무리 이동의 원리에 대한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동물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가 없는 만큼, 간접적인 방법을 썼다. 무리 이동을 수학적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해 내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밝힌 것이었다.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 외톨이로 남기를 두려워하되, 서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것. 둘째, 먹이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포식자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적어도 몇 마리는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만 프로그램에 입력해 넣으면 무리 이동의 장대한 움직임을 컴퓨터 화면에 재현해 낼 수 있다.

 

혼자 남았다가는 잡아먹힌다는 진화의 경험 때문에, 무리가 만들어지면 거기에 들어가려는 본능이 생겼다. 그러나 너무 가까워지면 충돌이 일어나므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앞장을 서면 질서 있는 무리 이동이 순식간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집단적 사고나 여론 형성도 무리 이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 리더의 깃발을 들고 나섰을 때,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생겨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동이 시작된다. 그런 추종자 대여섯 명이 모인 자리에서 나 혼자 다른 사람을 지지한다는 말은 꺼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위 사람들이 지지하는 리더를 나도 같이 지지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이렇게 해 소위 ‘○○바람’, ‘○○현상’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한번 바람이 일어나 탄력을 받은 여론은 쉽게 방향이 되돌려지지 않는다.

 

경제적 버블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1200조원을 훌쩍 넘어선 가계대출 버블은 저금리와 느슨한 가계대출 정책을 배경으로 생겨난 무리 이동이다. 너도나도 빚을 내어 아파트를 구입할 때, 나만 홀로 그 대열에서 뒤처져있기란 어쩐지 불안한 법이다. 힘에 부치더라도 지금 사두지 않으면 나 혼자만 이익을 못 볼 거라는 불안감이다. 이 불안감을 바탕에 깔고 부동산 버블과 가계대출 버블이 만들어졌다.

 

가계대출 버블과 부동산 버블에 대한 경고음이 처음 울린 것이 2002년이었으니, 우리 경제에 이 문제는 14년 묵은 병이라 할 수 있다. 애초 금리를 너무 낮추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가계부채를 억제하자니 경기불황이 걱정되고, 부동산 경기를 살리자니 가계부채가 걱정된다며, 어정쩡하게 세월을 보냈고, 그러는 사이에 버블은 커질 대로 커지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저 멀리 포식자의 그림자가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이 지난 26일 잭슨홀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추가 금리 인상을 위한 여건이 강화됐다”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시점이 오는 9월이냐 아니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때 우리도 무조건 금리를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금리를 현 수준에서 무한정 묶어둘 수는 없다. 금리가 올라가면 부동산 버블과 가계대출 버블이 정말 붕괴되고야 마는 것일까? “터질 것은 반드시 터지고야 만다”는 격언에 예외는 없는 것일까?

 

포식자의 공격으로 대열이 흐트러진 무리는 신속하게 다시 리더를 중심으로 새로운 대열을 형성한다. 그런데 이때의 리더는 보통, 공격받기 전까지의 리더가 아니다. 이로부터의 시사점은 정책당국의 역할이 지금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계의 막연한 불안감, 꼼꼼한 심사 없이 대출을 늘려왔던 금융사들의 단기적 영업성향, 경기부양을 금융안정보다 우선순위에 놓았던 경향 등등, 이제까지 부동산 버블과 가계대출 버블을 키워왔던 생각의 틀을 깨고 집단적 사고의 새로운 리더가 되어야 한다. 우리 경제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경제주체들과 긴밀하게 소통함으로써, 과민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끌어야 한다. 불가능한 과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정책당국의 유능한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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