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꿈꾼 날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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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경제와 세상]꿈꾼 날 아침에

by eKHonomy 2016. 9. 22.

지난밤의 꿈은 참으로 어지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어느 선배 교수가 닳고 닳은 웃음으로 종이쪽지를 건네며 어딘가로 빨리 전화를 걸라고 한다. 종이에는 재벌 기업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내가 할 일은 우리 대학의 발전기금을 모으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누군가가 하다 하다 술값을 그런 식으로까지 추렴하느냐며 악을 써댄다. 나는 선배 교수의 명령을 한마디로 자를 용기가 없어 망설였고, 돈 달라는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당혹스러웠으며, 그 돈이 실상은 발전기금을 가장한 술값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대꼈다. 어느새 이불 속으로 스며드는 서늘한 초가을 아침 공기에 반쯤은 의식이 돌아왔음에도 나는 여전히 잠들기 직전에 읽고 들었던 뉴스에 온갖 잡다한 일상이 뒤섞이며 나타난 꿈속의 곤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경제학자 스티븐 마글린은 엄청난 치료비가 드는 불치병에 걸린 아이를 위해 메디케이드(미국의 국민의료보조시스템)를 받아들일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끝내 거절한 아빠의 일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우울한 과학(Dismal Science)>이라는 책의 말머리를 잡는다. 결국 죽음에 이른 아이의 아빠는 말한다. “만약 정부 돈을 받는다면, 우리는 이미 아미시가 아니에요.”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옛 영화 <위트니스>에서 하얀 두건에 앞치마를 두른 여주인공의 모습으로 내 머릿속에 남은 아미시 공동체 얘기다. 얼핏 현대 과학을 부인하는 몽매함으로 읽히는 이 에피소드에 대해 마글린은 시장은 공동체를 파괴한다, 나아가 경제학이 그것을 방조한다는 명제로 나아간다.

 

시장이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명제는 그다지 새로운 것도 아니고, 드라마 속의 모든 행복한 가정과는 달리 현실의 가정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듯이 공동체의 낭만주의적 신화 또한 믿을 것은 못된다. 아이 하나를 온 마을이 키운다 했던가? 마을 공동체가 사라진 오늘, 아이 돌보기의 선택은 두 가지, 직접 맡거나 비싼 돈을 들여 보육도우미를 들이거나. 시장은 지불능력이 있는 이들에게는 어쨌거나 훌륭한 대안이다. 아이를 안고 어린이집 앞에서 종종거릴 이유도 친정어머니에게 부담을 떠넘길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개인과 사회 그사이에 놓인 공간에 완충역할을 하는 것이 공동체였다면 시장의 발전은 그 빈틈을 돈으로 메우거나 각자도생하거나라는 선택지를 던져준다.

 

사랑도 희소한 자원이니 절약해야 한다 했던 어느 경제학자에 대해 마글린은 사랑은 쓸수록 자라는 매우 특별한 상품이라며 익살스럽게 대꾸한다. 그러나 진원지에서 한참 떨어진 고층아파트의 내 가족을 걱정하던 바로 그 순간에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심야작업 중에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 앞에서 그것은 더 이상 익살이 아니라 냉혹하고도 도저한 시장의 논리로 변신한다. 이제는 단 한 치도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다. 비용절약의 논리가 이른바 ‘협력’업체 직원의 안전을 챙기는 동료애를 대신한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 한 통이면 살릴 수 있었을 목숨은 스러진다.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시장에 노출되는 경제적 약자에게 완충지대를 제공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일 테고, 비록 유사 이래 모든 국가는 지배계급을 위한 국가였다는 명제를 체념으로 받아들이다가도 국가권력에 못내 바라는 최소한의 공공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국가권력조차도 시장논리로 작동한다.

 

지난밤 꿈에 내가 느꼈던 당혹감은 내게 권력이 있을 때 혹은 내가 권력자의 대리인이라면 쉽게 해결될 것이다. 그저 명단에 적힌 이름들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미간에 힘을 주며 슬쩍 던지는 암시만으로도 나는 모금액을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므로. 그런데 과연 권력이 시장을 굴복시킨 것이었을까? 아니면 시장이 내 권력을 사면서 몇 푼 던져준 것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우리는 그저 호혜적인 거래로 우리만의 공동체를 구축한 것이었을까? 그 돈은 진정 대학발전기금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술값이었을까?

 

때로는 세상일이 덜 깬 꿈같기도 하거니와 그 꿈에서조차 세속의 논리는 어김없이 관철된다. 그러나 나는 다시 힘을 내어 내 꿈을 스스로 만들어 본다. 종이를 찢으며 우리 술은 우리 돈으로 마시자고 소리 지른다. 무엇보다 여기에 사람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외친다. 현실이 꿈으로 재현되는 것이라면, 꿈도 언젠가는 현실로 재현될 것이라고. 그렇게 목이 메도록 외치고 싶은 아침이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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