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촛불이 요구하는 정의는 무엇인가?
본문 바로가기
경제직필

[경제직필]촛불이 요구하는 정의는 무엇인가?

by eKHonomy 2019. 8. 29.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 중 하나가 후보자 딸의 대학 및 대학원 입학과 관련한 것이다. 이 의혹들의 사실관계나 불법성 여부는 조만간 검찰수사와 청문회를 통해 밝혀지리라 믿는다. 사실 여부나 불법성 여부를 떠나 그 폭발력은 엄청났다. 안 그래도 하루하루가 힘든 청년세대들과 그들의 ‘못난’ 부모세대들은 분노하였고 급기야 고려대와 서울대 등 관련 대학 학생들이 조국 후보자를 규탄하며 ‘정의’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개최하였다. 나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하고 의견을 개진한 청년학생들에게 격려와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고려대와 서울대의 선배들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시기마다 굵직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이번 학생들의 촛불집회도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받아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추동하는 집회로 발전시키길 기대해 본다.


서울대 학생회관 앞에서 28일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주최의 ‘제 2차 조국 교수 STOP ! 서울대인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은 지난 23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우철훈 선임기자


학생들은 무엇에 분노하였고 그들의 촛불이 요구하는 정의는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그것은 조 후보자의 딸이 다른 사람보다 ‘손쉽게’ 스펙을 쌓았고 ‘그를 이용해’ 대학 및 의전원에 입학했으며 ‘자격이 없음에도’ 장학금을 받았다는 의혹들에 대한 박탈감과 분노의 표출이다. 이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공정성의 심각한 훼손이며 이로 인한 부정의는 즉각 시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촛불이 여기에 멈춰서는 안된다. 학생들이 요구하는 정의 속에는 그들과 다른 세상에서 살며 최소한의 사회적 권리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정말 어렵고 힘든 ‘청년들’에 대한 정의와 그들에 대한 사회적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함께 있어야 한다.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사회의 최소수혜자에 대한 배려와 정의를 강조한 바 있다. 고려대 학생들과 서울대 학생들은 대한민국 청년들 중 상위 1%이고 누구보다 특혜를 누려왔다. 이들이 드는 촛불은 자신들의 SKY 캐슬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촛불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촛불이어야 한다. 24세 청년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힘든 노동을 하다 죽었고, 19세의 청년은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낀 채로 사망하였다. 오늘도 많은 청년들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택배와 배달 노동을 하면서 부상당하고 죽는다. 그들의 부상과 죽음에 대해선 외면하던 정치세력과 언론들은 이번 촛불집회를 두고는 ‘청년들의 분노’라며 곰비임비 변죽을 울리고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정의의 관점은 ‘기회의 평등’이다. 이 관점에 의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나 선택을 통해 적극적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요인들, 즉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요소들’에 의해 발생한 불평등은 공정하지 않다. 사회는 이렇게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요소들에 의해 발생한 부정의를 적극적으로 시정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요소들의 대표사례가 부모의 영향이다. 부모의 영향은 재력, 학력, 인맥, 가정교육, 유전자 등 매우 다양한 매개를 통해 자식들의 학업이나 경제적 성취에 심대한 영향을 준다. 성별이나 인종, 출신 지역도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요소들이다.


최근의 사태를 둘러싸고 인터넷에서는 수능이나 정시를 통한 선발과 학종이나 수시를 통한 선발 중 어느 방식이 더 공정한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부모의 영향이 어느 전형방식에서 더 크게 나타나는지 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 논쟁은 공허하다.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요소들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있다. 예컨대 정원의 3~5배  인원을 수능이나 학종을 이용해 일차 선발한 후 최종합격자는 이들 중 추첨을 통해 선발하는 방식이다. 추첨은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요소들은 전적으로 무력화하는 방법 중 하나이고 그래서 일부 국가에서 징병에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자식만은 꼭 SKY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 방법으로 선발하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한 부모를 선사할 수 있다면 이 역시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요소들의 영향을 없애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많은 경우 기회는 사전적으로 불평등하고 이의 시정은 광범위한 사후적 보상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임금체계의 개편, 조세제도의 개혁, 복지지출의 확대 등 사회적 보상구조의 개혁과 변혁이 기회평등의 실현에 중요한 이유이다. 


학생들은 정치적 공방과정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단순한 분노를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그리고 그 구조개혁을 저지하려는 기득권세력들에 맞서는 횃불로 승화시켜주길 바란다.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청년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워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청년들에게 미안하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