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 부동산 시장, 깊게 생각하고 멀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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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경제직필] 부동산 시장, 깊게 생각하고 멀리 보자

by eKHonomy 2020. 7. 23.

인간이 생산하는 모든 것은 토지(자연의 힘)와 노동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생산물의 가치가 투여된 노고(勞苦)로 결정된다는 노동가치론은 현대경제학의 상대가격 결정에 대한 실증과학이 아니라 그 밑바탕에 있는 가치의 근원에 대한 도덕철학적 사유로 이해해야 한다. 마땅히 노고의 크기에 따라 교환과 배분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노고가 인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의 원천이고, 토지는 누구에게도 귀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고가 일군 번영이 보상은커녕 노동자의 빈곤을 양산하는 원인은 바로 토지 소유권에 있다는 것이 19세기 정치가이자 정치경제학자인 헨리 조지의 주장이다. 토지의 소유권이 행사하는 독점적 폭력이 노동이 일군 진보와 번영의 열매를 공정하게 나눌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 현대 ‘실증’경제학을 신봉하는 이들에게 터무니없게 들릴 수 있겠지만 반박할 만한 논리를 경제학이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헨리 조지, 아니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등과 같은 고전경제학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도 현대경제학의 관심은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경제현상을 실증적 언어로 기술할 뿐, 현상의 밑바탕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규범에는 무관심하다.


토지는 주어졌고 더 늘어날 수 없으나 그 용도는 기술과 문명이 발달할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누구도 토지가 존재하도록 기여한 바 없지만 누군가는 그 토지의 쓰임세 때문에 부를 축적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아니라고 볼 수밖에 없으니 문제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토지를 통한 ‘불로(不勞)’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커지고 이에 다수가 분노하고 절망한다. 


부동산 시장엔 국가경제의 총체적 특성이 반영된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과 배분에 대한 정책은 기본적으로 중장기적인 시간지평으로 수립돼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적으로 해결하기엔 문제의 뿌리가 너무 깊다. 모든 문제가 정쟁의 도구가 되는 삼류 정치로 문제는 과장되고 왜곡되고 판단은 근시안적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어느 정권도 부동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떤 정책으로도 이 문제를 단기에 해결하기 힘들다. 많은 선진국들도 같은 경험을 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부동산 가격상승이 심각하고 최근 이에 대한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의 부동산 정책으로 어느 정도 가격 불안정을 막아왔지만 최근 그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아직도 주택보유비율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인 점과 주택보유를 중시하는 국민 성향을 감안할 때,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으로 집값이 상승하는 세계 경제의 전반적 흐름을 볼 때 단기적으로 집값 상승을 막는 것은 더욱 힘들고 따라서 지금 정책의 성패를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수도권 과밀로 인한 집값 상승을 막고 서민들의 주거 불안정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천정부지로 상승하는 강남 집값은 이런 문제의 여파다. 여파를 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니 강남 집값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근시안적 처방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근본 처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공시가격 현실화와 세율인상을 통해 부동산 소유에 대한 과세부담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는 것은 당연하다. 동시에 임차인의 주거권을 확대하는 입법과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 양질의 장기 임대주택 공급도 충분히 확대돼야 한다. 안정된 주거권이 임차를 통해 확보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근본적 해결책은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고 균형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국가 기능의 지방이전을 가속화해야 한다. 전 세계 도시 중 서울만큼 투자가 집중된 곳을 찾기 힘들다. 생산성 대비 투자집중도를 따져 보면 서울은 최상위권이다. 이미 포화된 수도권의 공공투자보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투자가 우선시돼야 한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지역인재 채용을 확대하여 비수도권에서도 높은 삶의 질과 고용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규제는 ‘시장의 원리에 반한다’는 반론을 만병통치약처럼 남발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시장은 허구다. 시장은 토지 소유권을 획정할 수 없고 단지 획정된 소유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고속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조건으로 농지개혁을 꼽는다. 토지를 공평하게 배분하여 계층 간 격차를 해소할 수 있었고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의 기회가 공평하게 보장될 수 있었다. 그렇게 축적된 인적 자원이 발전의 동력이 됐다. 토지 때문에 발생하는 과도한 부의 불평등을 막는 것이 필요한 것도 같은 이유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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