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경기부양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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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경향의 눈]경기부양의 조건

by eKHonomy 2019. 3. 28.

한국 경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두 건의 이벤트가 26일 있었다. 하나는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두고 벌인 논쟁이며, 다른 하나는 쇼크 수준으로 떨어진 삼성전자의 1분기 실적에 관한 것이다. 전자는 정치권이 경제를 어떻게 다루는가이고, 후자는 기업의 사정이 어떤가이다.


올 들어 문재인 정부는 경기부양에 올인하는 모양새다. 연초부터 추경을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지난해 ‘슈퍼 예산’을 짰지만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2019년 예산은 469조원(총지출)이 넘는다. 전년 대비 41조원 늘어난 규모다. 증가율은 9.5%로 2009년 금융위기 때(10.7%)에 육박한다. 전 정부의 평균 증가율(3.5%)에 비하면 3배 가까이 된다.


추경뿐이 아니다. 증권거래세도 인하했다. 증권거래세로 들어오는 연간 세수는 8조원을 넘는다. 거래세를 내리면 당장 세수가 줄어든다. 그래서 기획재정부에서 난색을 표했다. 그런데도 일단 올 상반기 인하를 결정했다. 세수 감소에 대한 보완대책은 내년에 세우기로 했다. 거래세를 내려 증시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액화석유가스(LPG) 차량 규제도 풀었고,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는 3년간 연기하기로 했다. 세수가 줄어들겠지만 경기부양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SOC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를 통해 경기를 띄우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정부는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고 말하지만 돈을 풀겠다는 뜻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 “SOC에 집중투자했던 과거 일본의 실패를 되풀이할 이유가 없다”고 한 것과 배치된다. 경제가 꼬이면서 고육책을 택한 것이다. 일단 물을 뿌리면 흙이 젖고, 흠뻑 뿌리면 물이 고이며, 쏟아부으면 물길이 날 것이라는 생각이다. 냉골인 경기에 훈훈한 온기가 돌 정도로 돈을 쓰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쓸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국민과 기업이 낸 세금에서 나온다. 지난해는 세수 풍년이라고 할 만큼 풍족했다. 세금이 많이 걷혀 25조원이 넘는 초과세수를 기록했다. 이는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 등의 법인세가 크게 증가하고, 부동산 거래가 늘면서 양도소득세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돈을 쓰려면 세수가 넉넉할 때가 기회다. 그런데 좋은 시절을 허송했다. 풀어야 할 돈을 주머니에 챙긴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의 총국세 세수 가운데 법인세가 가장 많다. 정부는 올해 예산을 짜면서 법인세수 목표를 지난해보다 16조원 늘어난 79조원으로 세웠다. 반도체와 금융업종 등의 법인 실적 개선과 법인세율 인상 등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 법인세수의 4분의 1에 달하는 반도체 업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1분기 실적이 충격적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분기에는 영업이익이 15조원을 넘었다. 그런데 삼성 측 스스로 시장전망치(평균 7조9810억원 정도)를 크게 밑돈다고 하니 6조~7조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다. 부동산경기가 꺾이면서 양도소득세도 줄어들 것이다. 세계경기도 좋지 않고 각종 세금 인하 퍼레이드로 올해 세수를 맞출지 걱정해야 할 처지다. 기획재정부가 ‘2020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에서 “법인세 양도소득세 세수호조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 것도 이를 반영한다. “올해에도 20조원의 추가세수가 발생할 것이 예상되므로 20조원의 추경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허황될 뿐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2022년에 마이너스 2.9%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의 국내외 경제상황으로 보면 악화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도 있다. EU의 재정준칙(안정과 성장에 관한 협약)은 이를 3% 이하로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를 넘어서면 위기로 판단한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에는 위험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어쩌면 더욱 빨리 올 수도 있다. 그런데 정부는 국가채무가 비교국가들보다 양호하다는 이유로 방심하는 것 같다. 한국은 국가채무는 낮지만 가계부채는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계부채는 세계경제 관련 기구로부터 수차례 문제가 크다고 지적된 바 있다.


정부와 여당이 세수확보 방안을 마련하고 경기부양에 나서는지 의심이 든다. 올해 추경은 10조원 정도로 예상된다. 정부는 내년 예산도 확장재정을 통해 경제활력을 키우겠다고 했다. 물론 국민 생활 안전과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은 필요하다. 그런데 경기가 나빠지면서 세수 증가세는 주춤하고 있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확장재정은 재정건전성의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 확장재정에 앞서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지출 구조조정이 먼저일 것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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