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 기독교는 이자를 금지했다. 그 이유는 ‘시간은 신의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자는 ‘시간의 경과’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신의 소유물이기에 거기에서 생긴 ‘이자’ 또한 신의 것이었다. 이자를 신이 아닌 인간이, 상인이 취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고리대금을 ‘우수라(usura)’라고 불렀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지 상인은 돈이 부족하다. 상인들은 우수라를 주고라도 돈을 빌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기회 손실’이라는 논리를 고안했다. 융자의 대가로 받은 돈은 ‘다른 곳에서 사용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대한 보상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기회에 대한 보상’을 우수라와 구별해 ‘인테레세’라 불렀다. 이것이 인터레스트(금리)의 어원이다. 그래서 이자는 항상 플러스 값을 갖는다. 그게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유례없는 풍경이 유럽에서 펼쳐지고 있다. 지난 8월 덴마크의 3대 은행인 ‘위스케은행’은 10년 만기 고정금리 모기지 금리를 마이너스 0.5%로 제시했다. 금융기관이 아닌 금융소비자에게 마이너스 금리 상품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대출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대출자가 웃돈을 받고 돈을 빌린다는 의미다. 대출원금보다 갚을 돈이 적어진다. 은행 입장에서는 웃돈을 얹어서 빌려주는 것이다. 물론 대출수수료가 있기 때문에 완전한 마이너스 금리는 아니지만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금융기관 사이에 마이너스 금리는 일본을 비롯해 독일, 스위스에 이어 스웨덴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2016년부터 일본은 10년 만기 국채 금리를 0.1%에서 마이너스 0.1% 사이에서 움직이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유로존을 관장하는 유럽중앙은행(ECB)도 2016년 이후 기준금리 0%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ECB는 역내 시중은행이 자금을 예치할 때 적용하는 예금금리를 기존 마이너스 0.4%에서 마이너스 0.5%로 인하했다. 자금을 예치하면서 낼 보관료가 더 늘어나는 셈이다.
주요국들에서 금리 인하가 확산되는 건 돈은 넘쳐나는데 사용할 투자처가 없기 때문이다. 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와 소득불평등 확대, 중동 산유국의 오일머니와 일부 선진국의 과도한 경상흑자로 저축이 넘친다. 그러나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변화하는 데다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로 투자가 위축되면서 실질금리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여기에 지속된 저성장 기조로 물가상승률이 낮게 유지되면서 금리 하락을 유도하고 있다.
정책당국의 고민은 기존 통화정책이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 상황에 있다. 통상 금리를 낮추면 경기가 살아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금리를 내려도 경제에 온기가 퍼지지 않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을 장기간 유지하고 있음에도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그래서 장기간 저금리에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아 ‘저성장, 저물가’를 겪은 ‘일본화(Japanification)’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일본의 경기침체는 1985년 플라자 합의가 도화선이 됐고 1990년 부동산과 증권시장의 버블 붕괴로 폭탄이 터졌다. 그러나 일본의 본격적인 고통은 1990년대 말 생명보험회사들이 역마진으로 무너지는 데서 출발했다고 한다. 일본의 기준금리는 1994년 1.75%에서 1995년 1%로 내려왔고 1999년 0.04%로 인하되면서 사실상 제로가 됐다. 일본은 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양하려 했으나 장기간 경제가 살아나지 않았다. 20여년간 경제 체력이 소진되는 긴 터널을 지나야 했다. 이를 지켜본 주요 국가들 사이에서 일본의 전철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가 지난 8일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7월 0.25%포인트 내린 기준금리는 추가로 인하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사상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는 것이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올해 성장률은 2%를 겨우 턱걸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저물가, 저금리, 저성장의 뉴노멀 상황이다. 여기에 한국 경제가 2017년 경기정점을 찍었고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발표도 있었다. 미·중 무역분쟁 격화, 한·일 간 무역분쟁 등 주변 여건도 불안하기만 하다.
세계 경제가 ‘일본화’, 즉 일본이 겪었던 저물가, 저성장의 늪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일원으로 주류의 흐름을 좇아갈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의 보험업계는 금리 인하로 충격에 빠졌다. 최근 문제가 되는 우리은행의 파생결합펀드(DLF) 손실도 따지고 보면 독일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먼 나라 남의 일만은 아니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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