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착시에 빠진 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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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경향의 눈]착시에 빠진 한국 경제

by eKHonomy 2017. 9. 14.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자신의 구미에 맞는 정보만 골라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쓴다.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경제를 보는 시각도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7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3.0%로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전망치(2.6%)를 0.4%포인트나 올린 것이며 시장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여기에 최근 한국을 찾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한국 성장률을 3%로 상향조정해 새 정부에 힘을 실었다. 불확실한 여건에도 견고함을 유지했으며 회복력도 굉장히 강하다고 했다. 국제기구 수장의 말이니 경청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이를 탄탄한 한국 경제의 증거로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이가 있다면 너무 순진하다. 전망은 전망일 뿐이며 수치로 경제의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없다. 통계는 많은 것을 말하지만 전부를 말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 움직이는 현장이다.

 

한국 경제는 장기 불확실성의 깊은 늪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3%는 기대치일 뿐이다. 이를 달성한다 해도 건실한 펀더멘털을 가질지 장담할 수 없다. 올해 1분기 1.1% 성장했던 한국 경제는 2분기 들어 0.6% 성장으로 추락했다. 중국사업의 먹구름은 한국 경제에 커다란 악재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한국 수출의 4분이 1이 중국이다. 그런데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보복으로 한국의 중국사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판매는 반토막이 났다. 올 상반기 판매량은 지난해 대비 52.3% 급감해 43만여대에 불과했다. 세계 5위에 올랐던 현대기아차의 경쟁력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사드 기지를 제공한 롯데마트는 개점휴업 상태다. 이대로 가다가는 연간 1조원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중국에 진출한 전기차 배터리 산업도 타격을 받고 있다. 화장품, 라면 등 소비재 분야와 면세점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사드 일부 배치 이후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의 피해 규모는 연말까지 8조5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성장잠재력이 안으로 곪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무역 1조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며 장밋빛 희망에 도취해 있다. 그런데 한국 수출은 ‘반도체 독주’의 기형적인 구조에 기대고 있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45%, 2분기에 54% 증가하며 한국의 수출을 주도했다. 반도체와 변동성이 큰 선박 수출을 제외하면 수출증가율은 1분기 12%, 2분기에는 7%로 낮아진다. 반도체와 달리 다른 산업의 수출증가율은 떨어지고 있다. 반도체 호황기가 저물면 대책이 없다.

 

한국이 두 차례 외환위기를 거칠 때도 반도체 호황 사이클이 꺼지던 시기이다. 이 같은 호황이 언제 다시 올지 장담할 수 없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수백조원을 들여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반도체 특수에 취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수준으로 떨어진 조업 가동률 상황은 무시되고 있다. 2분기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1.6%로, 2009년 1분기 66.5% 이후 최저 수준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재정여력은 튼튼한 편이다. 하지만 이것도 경제의 안전한 버팀목이 될지 의문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1400조원에 달한다. 가계부채가 이미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가 경착륙될 경우 디폴트 확산으로 소비 기반 자체가 붕괴될 우려가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으나 9월로 연기한 후 추석 뒤에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만큼 섣불리 손댈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서민들의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게 함으로써 유효수요를 늘리고 이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은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 장기간의 정책이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 재원마련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대내외 모든 변수들이 정부 입맛에 맞게 최상의 컨디션으로 작동할 것으로 기대하고 대책을 짰다. 너무 작위적이고 안이하다.

 

지금 한국 경제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북핵 사태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심화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보복은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산업이 초토화된 뒤 다시 세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해운산업의 붕괴에서 경험했다. 정부는 최상의 컨디션을 기대하지 말고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경제는 한국을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귀를 열고 반대편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착시에서 벗어나 위기의 본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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