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을 정확하게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일기예보가 부정확했던 과거에는 ‘경제학자의 전망과 일기예보 중 어떤 게 더 정확하냐’는 농담 섞인 내기가 있었다. 슈퍼컴퓨터가 등장한 뒤로는 내기가 사라졌다. 경제전망이 훨씬 더 많이 틀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제관료들은 여전히 틀릴 확률이 높은 전망을 내놓는다.
경제관료들의 전망은 대부분 장밋빛 일색이다.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일 것이다. 성장률이 높아진다. 수출이 늘어날 것이다’ 등 낙관적으로 미래를 내다본다. 하지만 그대로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의 전망은 사실상 거짓말에 가깝다. 전망과 다른 결과가 나와도 그들은 당당하다.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너무 많았다’고 하면 그만이다. 예측이 들어맞았다면 ‘변수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해야 하지만 답변은 다르다. ‘목표를 달성했다’며 자신의 성과인 양 뽐낼 게 뻔하다. 민간 경제연구소조차 ‘(정부의) 낙관적인 경제전망은 경제의 건전성을 떨어뜨린다’고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며칠 전 한 모임에서 “내년에 3%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내외 경제연구기관이 대부분 2%대를 전망해 3%는 실현하기 어려운 거짓말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정부는 1년 전 올해 성장률을 4%로 전망했지만 실제는 2%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최 부총리의 거짓말은 이미 유명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관련 예비비 사용에 대해 “어떤 정부도 예비비를 공개한 적이 없다”고 했고, 중소기업진흥공단 관계자의 시인에도 불구하고 인턴 채용을 청탁한 의혹을 부인했다. 담뱃값 인상은 세수 확보 차원이 아니라 국민 건강 목적이었다고 강변했고,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대출규제를 완화한 책임에 대해서는 “빚내서 집 사라고 말한 적 없다”고 발뺌했다. 국회에서 거짓말 논란이 불거지자 최 부총리는 “거짓말 한 적 없다. 모든 경제 예측에서 틀리면 다 거짓말이냐”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경환 부총리가 '노동개혁 향후 추진방향' 발표를 위해 브리핑룸에 입장하고 있다._경향DB
높은 성장률에 집착하는 것은 최 부총리뿐만 아니라 역대 정권에서 공통적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4% 성장률·70% 고용률·4만달러 국민소득 등 ‘474’를 목표로 내세웠다. 앞서 이명박 정부 때는 7% 성장률·4만달러 국민소득·7대 경제강국이라는 ‘747’ 공약이 있었다. 성장률과 국민소득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중요한 경제정책 목표이다.
성장률이 높아지고 국민소득이 늘어나면 형편이 나아지는 걸까? 성장률이 높으면 국가의 부가 그만큼 증가했다는 뜻일 수 있으나, 모든 국민이 더 잘살게 된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1년간 생산한 재화와 용역의 부가가치 합계’라는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난 비율을 의미하는 성장률은 이해하기 어렵다. 비교적 쉽게 체감할 수 있는 1인당 국민소득으로 따져보자.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2만8180달러(약 2968만원)였다. 4인 가구 기준으로 보면 1억1872만원인데, 지난해 소득이 1억원을 넘겼다는 가구는 많지 않다. 국민소득은 기업소득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가계가 쓸 수 있는 몫인 가계가처분소득은 지난해 1인당 1662만6000원, 4인 가구로는 6650만4000원이다. 가계가처분소득은 1970년대 후반까지 국민소득의 70%를 웃돌았으나, 갈수록 떨어져 지금은 50% 중반대에 머물고 있다. 기업 몫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소득 불평등이 심한 편이어서 가계가처분소득도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국세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0년 기준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8.1%를 차지하고 있다. 기업과 상위 10% 부자가 가져가는 몫을 제외하면 하위 90% 국민의 1인당 가처분소득은 당초 국민소득의 4분의 1로 쪼그라든다. 4인 가구라면 3000만원 안팎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돌파하더라도 국민 대다수의 살림살이는 별반 달라질 게 없다.
성장률이 높아지면 국민이 잘살게 된다는 건 적어도 현재의 한국경제 시스템에서는 거짓말이다. 분배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90%의 삶은 나아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부자와 대기업의 소득이 늘면 ‘낙수효과’에 의해 가난한 사람의 소득도 증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성장률이 하락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도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면 성장률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경제관료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겠지만, 성장률 덫에 빠진 채 끊임없이 장밋빛 거짓 전망으로 국민을 현혹시키려 한다. 언제까지 국민을 속이려 들 것인가.
안호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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