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약 19만t의 금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연평균 약 4300t의 새 금이 생산된다. 금값은 2018년 여름부터 2020년 여름까지 70%나 급등했다. 분석가들이 내세운 이유는 저금리와 세계 경제 불확실성의 증가다. 매년 새로 공급되는 금의 양이 금값 등락의 분석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은 드물다. 이미 존재하는 금 총량의 2~3%에 불과해 목욕통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충격을 줄 뿐이기 때문이다. 수명이 긴 다른 자산의 분석에서도 마찬가지다. 개별 종목이 아니라 주식의 평균 가격을 분석할 때 통상적으로 경제학자가 주목하는 것은 새 유입량이 아니라 존재하는 주식 스톡의 가치를 결정하는 거시금융 변수들이다. 금리, 유동성, 위험도, 경제성장률 등등.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김대중 정부 때 60%, 노무현 정부 때 53% 폭등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 개방으로 금리가 8%나 하락했고, 시장이 이에 대해 시차를 두고 반응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현재까지 41% 상승했다. 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도입한 정책이 임대주택과 ‘똘똘한 한 채’ 사재기를 조장한 것도 한 요인이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초저금리와 유동성 팽창,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형성된 저금리 장기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집값뿐만 아니라 세계의 자산시장이 요동하고 있다. 주식, 비트코인, 금, 구리, 니켈 등.
주택은 삶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투자의 대상이다. 우리나라 가계는 자산의 70% 이상을 주택으로 보유한다. 주택은 이질적이어서 금이나 주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 주택 투자자도 다른 주택으로 갈아탄다. 주식도 종목에 따라 이질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언론에서 자주 접하는 부동산 전문가들의 분석을 보면 필자의 시각과 매우 다르다. 보수 성향의 분석가들은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늘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근거는 최근 몇 년간 공급량이 조금 줄었다는 것이고, 해법은 용적률 규제 완화를 통한 획기적 공급 증대다. 그리고 GDP 대비 가계부채의 비율이 10%포인트나 증가해도 걱정하지 않다가 가격 하락 조짐이 조금 보이면 특단의 조치를 요구하기도 한다.
진보 성향의 분석가 중에는 새 아파트의 분양가격을 낮추면 헌 아파트의 가격도 저절로 낮아진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부동산 가격을 바이러스와 비슷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강남 아파트의 가격 상승을 막으면 다른 지역으로 가격 상승이 전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일부 소유자의 주택 관련 세금을 세게 때리면 전국의 주택 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믿기도 한다.
서울에 약 180만채의 아파트가 있다. 그리고 매년 3만~5만채의 새 아파트가 공급되고 있다. 사실 줄지도 않았지만 2~3%의 새 아파트 공급이 평소보다 조금 줄어든다고 아파트 전체의 평균 가격이 갑자기 40%나 뛸까? 소수의 새 아파트 분양 가격을 억제하면 아파트 전체의 평균 가격이 억제될까? 세금폭탄이라고 하지만 서울 아파트의 시가 총액이 1500조원에 달하는데 종부세 3조~4조원 더 걷는다고 아파트 평균 가격이 의미 있게 하락할까?
그럼 어떤 정책을 써야 하는가? 실망스럽게도 커다란 금융 흐름 속에서 발생하는 자산 가격의 상승은 투기 모멘텀이 지속되는 동안 정부가 되돌리기 힘들다. 거대한 공급 충격은 효과가 있겠지만 미래에 가격이 조정될 때 더 큰 아픔을 초래한다. 반복된 위기로 지난 10여년간 각국의 중앙은행은 앞다퉈 금리를 인하했고 불황 속에서 자산 가격이 급등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중앙은행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부의 불평등 심화, 부채 급증, 금리 상승 시 발생할 위험 증가라는 거대한 골칫거리를 세상에 안겼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그 짐을 중앙은행이 아니라 행정부가 전부 지고 있다. 꼬리로 몸통을 흔들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 표출 때문이다.
그래도 필자가 제안하고 싶은 정책은 1주택 가구를 포함한 대규모 보편적 종부세의 도입이다. 금리가 하락하면 세율을 증가시키고 금리가 상승하면 세율을 감소시키는 금리역행적 종부세다. 부동산 가격의 큰 출렁임은 막기 힘들겠지만 가격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 동시에 금리의 행동 반경을 넓혀 중앙은행이 실물경제 안정에 집중하게 할 수 있다. 정치, 입법, 행정상의 어려움이 심각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전례 없는 난제로 가득한 세상에는 전례 없는 정책이 필요하다.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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