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체계 개편과 모피아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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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의 경제시평

금융감독체계 개편과 모피아 개혁

by eKHonomy 2013. 7. 24.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금융감독체계 문제다. 유동성 팽창과 금융규제 완화를 배경으로 진행된 금융혁신의 위험성, 아니 그 속에 숨은 금융자본의 탐욕을 통제하기에는 감독체계가 너무나 허술했던 것이다. 특히 미국의 금융감독체계는 혼돈(chaos) 그 자체라고 평가될 정도였다. 연방 및 주(州) 차원의 수많은 감독기구들이 복잡하게 얽혀 중복과 공백의 문제를 증폭시킨 결과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방조했고 대재앙을 초래했다.


이후 금융감독체계 개편 작업이 진행되었고, 대충 마무리되었다. 여기서 ‘대충’이라 함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개편 작업이 끝났다는 뜻이기도 하고, 애초의 문제의식에서 크게 후퇴한 내용으로 봉합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0년 7월 미 의회를 통과한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이 대표적인 예인데, 미국의 특징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이 법은 법조문만 2319쪽에 이른다. 더구나 11개의 감독기구에 243개에 달하는 시행규칙 제정을 위임했다. 부속서류를 다 합칠 경우 2만쪽이 넘는 이 법을 다 읽어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새로운 금융감독체계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작동할지는 아무도 모르며, 시간이 지날수록 후퇴할 일만 남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한편, 이 법의 공식 명칭이 ‘월스트리트 개혁 및 금융소비자 보호법’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방대한 법에서 금융소비자 보호와 관련된 부분은 양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나머지 부분과 체계적으로 연결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명칭에서는 핵심으로 부각되어 있다. 왜 그런가? 금융소비자 보호 이슈가 갖는 정치적 폭발력 때문이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야당인 공화당의 협조를 얻지 않고서는 이 법을 통과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공화당이 거부할 수 없는 정치적 슬로건인 금융소비자 보호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공화당 역시 오바마 행정부의 명분을 살려주는 대신 이 법의 핵심인 월스트리트 개혁 부분에서 대폭 양보를 얻어내는 방향으로 타협했다. 미국은 그런 나라다.


이 짧은 칼럼에서 미국 사례를 비교적 상세히 소개한 이유는 한국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다. 첫째, 우리의 금융감독체계도 미국만큼이나 혼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통합 감독체계를 출범시켰으나, 관료조직(금감위)과 민간조직(금감원)의 2층 구조로 이루어진 이상한 모양새가 되었다. 더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을 합쳐 금융위를 만들었는데, 그나마도 국제금융정책은 기획재정부로 넘겼다. 


아무리 금융감독체계 문제에 정답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게 정상이 아니라는 데 토를 달 금융학자는 없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꿋꿋하게 5년간을 버텼고, 박근혜 대통령은 아무것도 공약하지 않았다. 정말 괴이한 일이다.


둘째, 한국에서도 금융소비자 보호 이슈는 뜨거운 감자다. 카드대란, 키코 사태, 저축은행 사태 등 수많은 피해자를 낳은 사건들이 줄을 이었고, 독립적 금융소비자 보호기구 설립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그런데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만든 ‘금융감독체계 개편 태스크포스’는 금융위의 기득권을 고수하면서 금감원만 물먹인 1안을, 그것도 공청회 절차도 없이 밀어붙이는 어이없는 정치적 실수를 저질렀다. 이때 “이걸로 되겠어요?”라는 말 한마디로 금융위를 공황상태에 빠뜨리며 금융소비자 보호기구 분리를 내용으로 하는 2안으로 방향을 튼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감각이 놀랍다. 반면, 협상의 지렛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이런 이슈에서도 아무런 대응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 등 야당의 정치적 무감각은 더욱 경탄스럽다.


셋째, 금융감독체계를 왜곡하는 힘의 원천은 어디인가? 미국의 경우에는 월스트리트의 탐욕이라는 원론적 정답이 있다 치더라도, 한국의 금융업계가 그런 힘을 가졌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모피아다. 그 막강한 금융감독 권한을 모피아의 조직적 이익을 위해 오남용하고 있다는 말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분리하는 것은 기획예산·재정·금융 등 정부 조직 전체를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 추진하기 어렵다고? 좋다. 건전성 감독과 영업행위 감독(금융소비자 보호 포함)을 분리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너무 커 당장 추진하기 어렵다고? 좋다. 다 좋은데, 하드웨어 개혁을 미루려면, 소프트웨어 개혁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금융감독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모피아 통제장치 없는 금융소비자 보호기구 설립 방안은 허울일 뿐이다. 정답이 없다는 말로 모피아 지배체제를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제 머리 깎기 어렵다면, 남이 깎아줄 수밖에 없다. 국회의 분발을 촉구한다. 대통령이 빠뜨린 부분, 즉 모피아 통제를 채워 넣는 것이 국회의 책무다.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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