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들 불완전 판매하고도 ‘투자자 탓’ 전가 관행 고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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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제윤경의 안티재테크

금융사들 불완전 판매하고도 ‘투자자 탓’ 전가 관행 고쳐야

by eKHonomy 2011. 5. 23.
제윤경 에듀머니 이사·참여연대 민생팀 실행위원

저축은행의 부정부패가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은 그동안 감독은커녕 문제있는 사안마다 해당 저축은행에 면죄부를 줬다. 금융당국만 저축은행의 비리를 감싼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최근 밝혀지고 있다. 29개 저축은행 사외이사의 37%가 소위 힘있는 기관의 공직자 출신이라고 한다. 이제 저축은행 문제는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를 지나 우리 사회 온갖 부조리와 부정부패, 권력과의 결탁 문제로 번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문제가 집중적으로 불거지는 부산저축은행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짐작도 어렵지 않다. 
 



부산저축은행 예금 피해자들이 조사를 마치고 나온 검찰 관계자의 팔을 붙잡고 애원하고 있다. (연합뉴스|경향신문DB)


가장 큰 피해자는 평범한 소시민들로 금융사 권유에 따라 후순위채권에 가입한 사람이다. 예금상품이야 보호되지만 후순위 채권은 저축은행이 파산에 이르면 원금 전체를 손해 볼 가능성이 크다. 지속적으로 영업행위의 부정부패가 전제돼 있었고 판매과정에서도 불완전 판매를 했음에도 채권 투자자는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위험성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신중한 투자를 하지 않은 투자자 개인의 ‘내 탓이오’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 시스템에서 투자는 기본적으로 투자자 책임을 전제로 한다. 투자자 판단을 흐리는 불완전 판매가 전제됐다 하더라도 금융사는 투자자 피해에 대해 배상책임을 거의 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가 다소 극단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환헤지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에 가입했다가 큰 손실을 입은 중소기업들의 경우 불완전 판매에 대해 은행을 고소했지만 패소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은행의 책임 문제에 대해 미국 당국의 의견을 참고용으로 문의했다고 한다. 미국의 답변 내용은 ‘만일 키코상품이 미국에서 판매됐더라면 판매 은행들은 사기죄로 기소됐을 것’이었다. 은행의 키코 상품 판매를 사기죄로 인정하게 되면 중소기업은 투자 피해금액 전체를 보상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여타의 다른 피해 보상까지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원은 투자자 책임으로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여론 또한 환헤지 상품에 가입한 중소기업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다. 투자 실패는 투자자 몫이라는 관념이 법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수 사람들에게도 상식처럼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그런 믿음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화살이 돼 돌아올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투자 상품의 불완전 판매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금융의 ‘내 탓이오’ 논리는 그간 금융회사가 언론을 이용해 끊임없이 학습시켜온 결과이다. 금융권 스스로 불완전 판매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내 탓이오’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켜왔던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번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이 투자 상품의 불완전 판매에 따른 위험성은 키코에서 후순위채권, 더 나아가 펀드와 회사채, 각종 대출 상품 등 개인의 자산운용 전반에 광범위하게 잠재돼 있다. 금융사에만 철저히 유리하고 대다수 금융소비자에게 투자 실패의 책임을 과도하게 지게 만드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가? 금융소비자는 자신이 저축은행 후순위채권이나 키코 같은 상품의 피해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언젠가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음을 자각하고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 금융의 ‘내 탓이오’ 이데올로기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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