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백련시장 옆에는 청년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달팽이집이 있다. 달팽이집은 민달팽이유니온이 청년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직접 임대하는 사회주택이다. 주거문제에 공감하는 150명의 청년이 마음을 모아 주택협동조합을 만들고 사회투자기금을 마중물 삼아 17명이 살 수 있는 다섯 채의 집을 마련했다.
보증금 60만원에 월 23만원. 월세 부담이 줄어들면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며 한국 사회의 새로운 대안적 주거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주거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청년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외면한 채 부동산 시장 활성화라는 경기부양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을 요약하면 빚을 내어 집을 구입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월세마저도 대출상품을 내놓았다. 대선 공약으로 야심차게 제시한 행복주택은 당초 예정된 물량이 대폭 축소되었고, 입주 대상 또한 제한되어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행복주택 추진 현황_경향DB
또한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민간 임대시장을 규제하겠다는 의지도 찾아볼 수가 없다.
질문이 있다. 집을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여기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과연 지속가능한가.
이미 주택 가격은 평범한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고, 주택담보대출을 필두로 한 가계부채는 1100조원을 넘어섰다. 투기로 점철된 부동산 거품이 다음 세대가 부담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설 때 빚으로 지탱하는 주택시장과 한국 경제는 일순간에 무너지게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미 임계점에 다다른 듯하다.
청년으로 표현되는 우리 사회의 다음 세대는 소득으로 집을 구입할 여력도, 더 이상 빚을 낼 여력도 없다.
중위소득의 노동자가 서울의 중간 수준의 집을 얻기 위해서는 7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100세 시대에 걸맞은 주택 가격이라 할 수 있다.
직면해야 할 불편한 진실이 있다. 부동산 경기부양을 빌미로 미래 세대의 삶을 저당 잡고 있는 지금의 시스템은 지속될 수 없다.
가계부채의 적신호, 낮아지는 미래 세대의 지불능력, 급격히 전환되는 월세 비율과 전세대란, 이에 따르는 주거 불안의 확대. 수많은 징후들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충분치 않음을 보여준다. 노후가 불안해서 집값을 부여잡는 부모 세대와 그 집을 구할 수 없어 반지하와 옥탑을 전전하는 자식 세대는 얽히고설켜 있는 우리 사회의 비극을 쌓아올렸다. 대학 기숙사 건립을 둘러싼 갈등은 이러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임대업자들은 환경 보호라는 명목으로 지역 내 기숙사 건립을 반대하고, 그 시위를 지켜보던 대학생들은 무기력한 얼굴로 학교로, 일터로 떠나간다. 왜 이런 잔인한 현실을 아무도 마주하려 하지 않는가.
임대업자가 꿈인 나라라는 이 무책임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주거불안을 중심으로 한 사회경제적 위기를 떠넘기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부동산을 둘러싼 갈등의 중심에는 부모 세대의 불안한 노후가 자리 잡고 있다. 주택 가격을 놓고 폭탄돌리기를 거듭할 것이 아니라 부모·자식 간의 연대를 통해 공적연금의 강화와 주거권의 보장이라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어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놓고 이제는 한국의 정치와 사회 운동이 책임감 있게 응답해야 할 것이다. 익숙한 절망 속에서도 낯선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힘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다.
임경지 |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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