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은 그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접대관행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실상 따지고 보면 접대행위에 대한 국가의 간섭은 이미 오래전에 세법에도 들어와 있었다. 회사가 지출한 접대비를 과세소득의 계산에서 비용(법인세법의 용어로는 ‘손금’)으로 공제하는 것을 제한하는 규정이 바로 그것이다.
담세력에 따라 과세하는 것이 공평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오늘날, 담세력을 어떻게 측정할지는 매우 중요하다. 번 돈(100)에서 나간 돈(80)을 뺀 나머지, 즉 이윤(20)이 담세력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언뜻 생각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공식으로 공평하게 세금을 매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소득계산의 법리에 따르면, 돈이 지출되었더라도 사업이나 수익과 관련되어야 하는 등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비로소 손금으로 인정한다. 따라서 쓴 돈 80 중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세금계산에서 제외한다.
문제는 법에서 정한 요건으로 손금 여부를 가리는 것이 분명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고, 접대비는 그러한 것들 중 하나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사기업 직원 갑은 공기업 직원 을과 고급식당에서 술자리를 겸한 식사를 하고 비용 50만 원을 회삿돈으로 처리했다. 이 식사의 외연은 회사 업무를 논의하는 회의지만, 실상은 고등학교 동창인 둘이 업무를 핑계로 한 오로지 사적인 술자리다.
행위의 실질에 따른다면 회사의 세금계산에서 50만원은 손금에서 제해야 하나, 껍질을 벗겨 그 속을 들여다보기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이렇듯 사적 편익과 사업경비 간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때가 흔히 발생하고, 이는 거래 내지 행위실질을 반영한 정확한 세금계산의 한계로 이어진다.
현행법은 기업의 접대비가 일정한 산식에 따른 한도를 초과할 때 그 초과액을 손금에서 부인한다. 한도는 매출액에 일정률을 곱한 금액과 1200만원(중소기업은 2400만원)을 더해 정한다. 그런 까닭에 매출이 커질수록 손금 한도도 자연스레 커진다.
우리나라 국세통계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법인이 접대비로 쓴 돈은 9조3368억원에 달한다. 잠정집계지만 이번 국정감사에서 국세청이 제출한 자료를 통해 보다 상세한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다. 2015년 귀속 접대비는 전년 대비 6.8% 증가한 9조9685억원인데, 이중 유흥업소(룸살롱, 단란주점, 나이트클럽, 요정 등)에서 쓴 금액은 1조1418억원으로 전체의 11.5%를 차지한다.
손금 인정 한도 내라면 룸살롱이나 요정에서 쓴 돈도 손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13년 전 룸살롱, 요정 등에서 지출하는 소위 향락성 접대비를 손금에서 전면적으로 제외하려는 국세청의 개정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강력한 조세저항에 직면했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재계의 거센 항변에 법 개정은 없던 일로 됐다.
세법상 접대비 문제의 논점 중 하나는 기업의 지출이 개인의 편익을 위한 것인지 업무에 따른 것인지 그 속내를 정확히 들여다볼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에서, 향락성 접대비를 정상적인 업무로 보아 손금으로 인정할지 또 인정한다면 어느 수준까지(장소와 금액)로 할 것인지, 그런 문제들에 대한 선긋기다.
경계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정해진 답은 없고, 우리의 의식 수준 내지 사회통념 따위에 따를 일이다. 미국, 독일, 일본 등 다른 나라의 입법례와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 법은 접대비의 손금 인정에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다. 13년 전의 시도가 무위에 그친 이후 향락성 접대비를 손금에서 제외시키는 법 개정은 당분간 어렵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다른 법역의 김영란법이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에 의해 접대에 관한 우리의 생각이 급변하고 있는 이참에 세법의 접대비 규정을 정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현동 | 배재대 경영학과 교수·조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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