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칼럼]삼성에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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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기자 칼럼]삼성에 없는 것

by eKHonomy 2012. 4. 4.

홍재원 산업부 기자 jwhong@kyunghyang.com

삼성그룹엔 ‘삼성전자와 삼성후자’란 우스개가 있다. ‘삼성후자’는 삼성전자를 제외한 다른 계열사는 모두 후순위로 밀린다는 뜻에서 생겨난 ‘내부 용어’다. 그만큼 그룹 내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은 대단하고, 이 회사 직원들의 자부심 또한 상상을 넘어선다.

그런데 전자에서 후자로 집단 이직한 이들이 있다. 삼성전자 LCD사업부 직원들이다. 2만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통째로 삼성디스플레이란 신생 회사로 이동했다. 이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겠지만 아무 잡음 없이 조용히 처리됐다.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 삼성전자 본사의 깃발 I 출처:경향DB


노조가 있었다면 LCD사업부 분할은 어려운 작업이 됐을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삼성전자에 노조가 있었다면 아예 사업부 분할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노조가 필요 없을 만큼 만족스러운 대우를 해주겠다는 게 삼성의 제안이었다. 그러나 LCD 업황이 기울자 사업부가 통째로 잘려나갔다.

무노조의 대가는 이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최근 불거진 공정거래위 조사방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직원들은 사내 게시판에 “아이들과 함께 TV를 보는데 관련 뉴스가 나와 부끄러웠다”거나 “친구들이 ‘삼성은 안 좋은 기업’이라고 욕할 때도 아니라고 했는데 이젠 할 말이 없다”는 글을 올렸다.

노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폐쇄회로(CC)TV 화면에 잡힌, 열심히 자료를 파기하던 그 직원은 쉽사리 관련 지시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조 차원에서 문제삼겠다”는 말 한마디의 위력은 상당하다. 지시를 내린 상관이 노조를 의식한 나머지 애초부터 증거인멸 지시 자체를 내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노조는 직장인의 권익을 지키는 수단인 한편,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회사의 부당한 행위를 감시하는 역할까지 한다. 경영실적 평가의 선봉에 선 계열사 사장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한다.

사실 지난해 복수노조 허용을 앞두고 삼성 경영진은 걱정을 많이 했다. 무노조 경영 원칙을 깨뜨리는 진짜 노조의 출현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부분 계열사엔 아직까지 제대로 된 노조가 없다. 직원들이 쉽사리 나서려 하지 않았다. 여기엔 회사 측의 압박, 무노조에 익숙해진 일종의 관성, 또 일단 내가 잘 보이고 봐야겠다는 생각 등이 한꺼번에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직원들은 통째로 ‘후자’가 되고, 국가 공권력을 우습게 아는 ‘나쁜 집단’으로 몰렸다.

삼성이 요즘 위기라고들 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스스로 경직된 관행을 깨뜨려야 한다. 지난번 칼럼에서 경영진에 ‘김용철 재영입론’을 소개한 바 있다. 직원들에겐 노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이는 회사 이익에 반하는 행위가 아니라 회사를 건전한 발전의 장으로 이끄는 혁신이기도 하다.

미래는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걸, 세계시장을 호령해 본 삼성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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