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의 시기, ‘지역’이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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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이일영 칼럼

대전환의 시기, ‘지역’이 동력이다

by eKHonomy 2015. 9. 23.

이제 한국 경제는 거대한 전환기에 들어섰다. 1990년대 이래 한국의 성장동력이 되었던 중국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성장률이 하향 조정되는 것은 새로운 정상 상태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후 회복력을 보였던 미국도 2016년에는 조정기에 진입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유럽과 개발도상국 경제가 회복되지 않으면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경제는 국내적 조건도 좋지 않다. 국내 소비는 위축되어 있고, 고령화 추세가 가속화되어 어느 순간 인구절벽에 부딪힐 것이라는 우려가 깊다. 주식·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전망도 지극히 불확실한 속에서, 양극화와 불평등은 깊어지고 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고성장 추세 속에서 감추어져 왔으나,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50여년간 한국에서는 3% 이하 저성장이 2년 이상 지속된 경우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2012~2015년의 4년 연속 3% 이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 거의 확실해지고 있다. 여러 지표는 저성장 추세가 구조화하고 장기불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한국 경제의 수출주도형 성장 구조가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

그러면 한국 경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내수와 소득이 주도하는 성장 체제, 수출과 내수가 균형적으로 성장하는 체제를 지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방향성이 당장 실현 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경제학 교과서가 말해주는 바처럼, 소비 요소는 투자나 수출 요소처럼 민감하게 변동하는 것은 아니고, 정책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수단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 경제의 새로운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그간 활용되지 않았던 자원을 끌어내야 한다. 수출주도 대기업 체제에서 소외되고 방치되었던 부문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지역과 마을에 사람들이 모이고 있는 최근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9월18일에는 두 개의 민간 연구단체가 함께 ‘진화하는 지역, 도농관계의 전환’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그간 농정연구센터는 농업·농촌의 정책 문제에, 세교연구소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담론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런데 서로 다른 영역의 두 연구단체가 절박한 문제의식 속에서 만났다. 대전환의 시기에 현장의 정책과 사회적 전환의 담론이 교류·연결하여 대안의 비전과 운동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한국 사회는 파괴적 압력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지역 활동가들이 전하는 감동적인 분투의 사례들을 논의했다. 서울시에서는 마을 주민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서울시 마을 정책은 마을을 만들 수 있는 주민을 등장시키는 데 초점을 두었다. 그 결과 대략 10만여명의 서울시민이 주민으로 나섰고, 3000여개의 주민모임이 등장했다


강원 삼척시 남양동 거리에 원전유치를 반대하는 글귀가 쓰인 노란 리본이 걸려 있다_경향DB



삼척시는 보수적 지역정치가 압도하는 에너지 공급기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삼척의 생태민주주의 세력은 핵발전소 유치 반대 과정에서 성장제일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고 있고 지방선거 승리라는 성과도 이루어냈다.

완주군은 한국 경제의 약점인 지역 침체, 고령화, 삶의 질 악화라는 악순환 구조에서 벗어나는 데 성과를 보여준 곳이다. 완주는 로컬푸드 사업을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 영역의 다양한 사업을 주민참여와 도농연계 방식으로 추진하여 500개가 넘는 일자리를 창출했다. 농업·농촌의 6차산업화도 진전되고 있는 현실에도 주목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 실험들은 아직 고립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의 경우 10만여 시민이 모임에 연결되었다고 하지만 1000만 시민 중에서는 1%에 불과한 수준이고 그들이 경제영역으로 나아간 경우는 아직 드물다. 드넓은 서울시의 광역 차원 행정기능으로는 주민들의 생활세계에 파고들어 갈 수 없다. 완주군 같은 경우 전주시와 같은 대도시와 연계하면서 경제적 모델을 만들어낸 경우다. 그렇지만 완주 역시 규모의 경제의 이익을 누릴 만한 상황은 아니며, 복제와 확산이 가능한 모델인가에 의구심이 있다.

서울의 경우 기초자치단체 규모의 연결망이 촘촘하게 만들어져야 하고, 지방의 경우 광역경제권 정도 규모의 지역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역 네트워크 안에서 산업의 다각화와 복합화가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활력이 창조될 수 있다. 수출주도형 대기업 체제에 대한 대안의 동력은 ‘지역’의 네트워크에 있다.


이일영 | 한신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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