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부터 금융계에서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전쟁이 또 하나 시작되었다. 요즘 가요계가 올드보이의 귀환으로 떠들썩한데, 가히 올드가이의 귀환이라 할 만하다. 삼성생명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태풍의 핵은 언제나처럼 우리나라 법질서를 위반하며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 문제다.
삼성은 우리나라 금융질서의 근간을 위배하면서 금융기관의 고객 돈을 이용하여 계열회사를 지배하는 구조를 유지해왔다. 그래서 틈만 나면 문제가 되었다. 삼성생명의 지배회사인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에 해당해서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것이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을 위반해서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야 했지만 어떻게 국회의원을 움직였는지 오직 삼성만을 위한 부칙을 신설해서 또 넘어갔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규제하자는 공정거래법 개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임에도 불구하고 먼지 속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보유를 문제 삼을 수 있는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본사(출처 :경향DB)
그런데 이번에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한판 승부가 다시 시작되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종걸 의원이 보험회사의 자산운용규제 정상화라는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현행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회사의 자산운용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객 자산을 특정한 투자대상에 ‘몰빵’하여 운용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
또한 대주주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주주나 그 특수관계인이 연관된 투자대상에 ‘몰빵’하는 것도 규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삼성생명이 삼성 계열사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은 삼성생명 총자산의 3% 이내여야 한다. 이 수치는 대략 5조원에 못 미친다. 그런데 삼성전자 주식 보유액은 시가로 약 19조원이 넘는다. 규제 원칙에서 벗어나는 ‘몰빵’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자산운용 비율을 산정할 때 분모인 총자산은 시가로 평가하지만, 분자인 삼성전자 주식은 취득원가로 평가하도록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비율은 현실과 무관하게 엄청나게 작은 값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이 규제는 유명무실하게 된 것이다. 이게 지난 50년 동안 감추어졌던 비밀이다.
그동안 감독당국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또 앞으로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과거 감독당국은 삼성 앞에서는 종이호랑이였다. 모피아는 다른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골목대장’이었지만, 삼성 앞에서는 순한 양이었다. 그동안 정부 내에서 그나마 삼성과 한판 붙었던(?) 사람들은 모두 비모피아였다. 김종인 전 경제수석,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 이동걸 전 금융위 부위원장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곧바로 ‘처리’되고 그 자리를 메운 금융관료들은 한없이 연약한 어린 양들이었다.
이번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말은 다 옳은데, 신중히 검토해 봐야겠다” 정도의 답변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삼성의 지배구조가 흔들리는데 어쩌나”라는 답변도 들린다. 이것이 금융관료가 할 소리인가.
삼성이 고객 돈을 이용해 부당하게 왕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이지, 이 잘못을 시정할 경우 부당하게 유지되던 왕국이 흔들린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인가. 이들이 어떻게 국민들에게 금융감독은 자신들 관료조직이 해야 제일 잘할 수 있다고 떠벌릴 수 있단 말인가.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아마도 삼성은 현재의 정무위 의원, 올해 하반기에 새로 교체될 정무위 의원들에 대한 로비 전략에 이미 착수했을 것이다. 여야 각당 지도부에 대한 로비도 어쩌면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정무위 의원들은 이제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 본인들이 믿는 바가 무엇인지. 물론 각당의 지도부도 이 점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다. 특히 새 정치를 앞세워 신당을 창당한 새정치민주연합은 금융규제의 정상화에 관한 새 정당의 정책기조를 분명히 밝힐 때가 되었다. 많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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