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질문하는 사람’에게 있다. ‘답변하는 사람’은 질문하는 사람에게 종속된다. 요즘 유행하는 갑을관계로 따져보면 질문하는 사람은 ‘갑’이고, 답변하는 사람은 ‘을’이다. 경찰서에서 경찰관과 도둑이 마주앉아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름이 뭡니까? 사는 곳은?” 질문하는 사람은 경찰이다. 도둑은 경찰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도둑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저항은 묵비권을 행사하는 정도다. 기업이나 군대에서도 상사는 질문을 하고 부하는 대답을 한다. 조직에서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는 비결은 별것 없다. 언제 어디서든 상사의 질문에 답변을 잘하면 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사상가인 엘리어스 카네티는 <군중과 권력>에서 질문을 권력의 핵심 요소로 규정했다. 그는 “모든 질문은 일종의 침입이다. 질문이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될 때는 희생자의 살을 도려내는 칼과도 같다”고 했다. 카네티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질문의 왕’이다. 소크라테스는 노예 소년에게 질문을 연거푸 던져 기하학의 원리를 스스로 깨닫게 했다. 노예 소년이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답하느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나게 머리를 쓴 결과였다. 소크라테스는 위선자들이나 현학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어 그들의 위선과 무지를 만천하에 드러나게 했다. 이 모든 것이 질문의 힘이었다.
사람들은 질문도 하고 답변도 하면서 살아간다. 질문자에서 답변자로 위치가 수시로 바뀌기도 한다. 경찰관은 수사의 허점이나 인권 침해 가능성 등을 지적하는 검사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검사는 법정에서 도둑의 범행 동기 등을 묻는 판사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야 한다. 판사 역시 국정감사나 인사청문회에 출석하면 국회의원들로부터 질문 공세를 받는다. 그렇지만 질문만 하고 답변은 전혀 안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에게 향하는 질문 자체가 차단돼 있기 때문이다. 바로 독재자다. 독일의 히틀러나 소련의 스탈린,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부하나 국민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반대로 최고권력자의 질문에 ‘건성건성’ 대답하는 사람은 곧바로 숙청된다.
[장도리]2014년 1월10일(출처 :경향DB)
남한의 재벌 회장도 비슷하다.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회장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질문했다는 회사 임직원 이야기 역시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회장님 질문에 답변을 못하면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한순간에 날아간다. 아주 가끔이지만 재벌 회장들도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있기는 하다. 회사 돈 횡령이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검찰에 출두하는 경우다. 하지만 저지른 범죄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아내는 회장들을 보면 검사실 안에서 실제로 어떤 질문과 대답이 오갔는지 알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질문을 받았다. 대통령이 된 뒤 처음으로 가진 회견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국민 아래에 있으므로 국민의 질문을 받아야 하고, 가능하면 자주 많이 받아야 한다. 취임 첫해 노무현 대통령은 11회, 김대중 대통령은 8회 기자회견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은 각각 4회와 3회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취임 첫해 아예 없었고, 취임 2년차에 이뤄진 이번 첫 회견은 기자 12명의 질문지를 사전에 받아 ‘연출’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인터넷에는 ‘대통령 기자회견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대통령은 분기에 한 번 이상 기자회견을 가져야 하고, 사전에 질문지를 요구하여서는 아니되며, 만약 그에 응한 언론사는 처벌하고, 기자의 질문 순위는 공정하고 공평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박 대통령에게 질문을 해본다. “이런 기자회견법 제정 여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창민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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