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용은 “의사결정 시점 이전에 지출되어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으로 정의된다. 전통적으로 경제학은 이러한 비용은 현재의 의사결정에 반영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현재 시점에서 앞으로 소요될 비용과 얻어지는 편익을 비교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뷔페식당에 입장하려면 일정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일단 지출된 비용은 개인이 먹는 음식의 양과 무관하다. 적게 먹는다고 일부 금액을 환불해 주지 않고, 많이 먹는다고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뷔페식당에 입장하는 순간, 개인은 음식을 섭취하면서 얻게 될 행복감과 과도한 포만감 등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비교하여 얼마나 더 먹을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뷔페식당에 가면 자신의 위장이 허용하는 최대량을 소비하고자 하는 강한 유혹을 받는다. 이미 들어간 돈이 아깝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린 시절의 나처럼 사후적으로 소화불량과 배탈 등의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
‘매몰비용 오류’에 대해 행동경제학에서는 흥미로운 설명을 내놓았다. 매몰비용에 매달리는 인간의 경향성은 인간의 합리성이 심리적 요인에 영향을 받아 제한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이미 투자된 금액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싫어하는 ‘손실회피’ 성향이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 포기해야 할 매몰비용이 클수록 손실회피 기제는 강하게 작동할 것이다. 하지만 같은 문제라도 이를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반응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영주 입장에서 이미 투자한 100억원이 아깝다는 관점이 아니라 앞으로 들어갈 추가 투자액이 200억원이고 수익성도 불확실하다는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의사결정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개인과 기업에 매몰비용 처리가 중요하다면 정부와 국가에는 미래를 결정할 중차대한 사안이 될 수 있다. 수십년간 대한민국을 달군 국책사업 논쟁을 보면 예외 없이 매몰비용 문제가 숨어 있다. 사업 추진 측은 매몰비용을 매몰하고 싶어 하지 않는 국민 정서를 적절히 활용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이 본격 시작된 2009년 이후 홍수예방과 수량확보의 실효성 문제나 수질오염과 생태계 훼손에 대한 우려로 사업 중단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이미 투자된 수조원이 아까워서라도 사업을 멈출 수 없다는 반박 주장이 거셌다. 오랜 경험을 통해 정치인과 관료는 매몰비용이 국민 설득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임을 체득했던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혹은 재개 문제에 있어서도 매몰비용은 중요한 의사결정 요소로 작용했다. 상당 수준의 합리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는 50대 지인 중에도 “점진적인 탈원전은 괜찮지만 이미 시작한 공사인데 신고리 원전은 완공하는 게 좋지 않겠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전형적인 매몰비용 프레임이다. 만약 신고리 5·6호기 현장 공사가 시작되기 이전 공론화가 이루어졌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공론화 보고서를 보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선택한 이유를 묻는 문항의 보기로 “원전건설이 중단될 경우 2조8000억원의 피해비용이 발생해서”라는 항목이 포함돼 있고, 이 때문에 건설 재개를 선택했다는 응답자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재개를 주장하는 이들이 종합공정률 28.8%(실제 건설공정률 10.7%)와 기 투자 건설비 1조6000억원에 보상비 1조2000억원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매몰비용을 살리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적 기제를 자극하는 것이다. 7조원의 추가 투자비가 소요된다는 사실은 이러한 흐름에 묻혔다.
불확실성이 높은 국가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매몰비용을 악용하는 사례는 배격돼야 한다. 2012년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 강연에서 당시 지식경제부 차관은 “우리 원자력계 일하는 방식 있지 않습니까. 허가 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돈부터 집어넣지 않았습니까…(중략)…허가 안 내주면 7000억원 날린다고, 큰일 난다고 할 것 아닌가”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개발부처 공무원의 사고 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한국수력원자력은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가 나기 2년 전 2조3000억원 주기기설비 공급계약을 하고, 1년 전 1조1775억원 건설계약을 진행했다. 건설 허가가 떨어진 2016년 6월 종합공정률은 이미 18.8%였다.
이런 왜곡된 행태는 원자력 업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국책사업 곳곳에 선제적으로 매몰비용을 확보하고자 하는 행태가 반복된다. 관행이라고 용인하기에는 너무나 부작용이 많다. 국민의 눈을 가리고 의사결정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우리 국민이 매몰비용의 유혹을 떨치고 과감히 매몰비용을 매몰할 때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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