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시작한 한 해가 코로나 속에 저물고 있다. 아직도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봄과 여름철의 대유행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겨울에는 더욱 센 기세로 번지고 있다. 확진자가 하루 1000명을 오르내리고 있으며 하루에 10~20명이 숨졌다. 코로나19의 창궐이 다른 사건은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코로나19는 모든 이슈를 잠재우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빚문제다.
한국 사회가 빚에 중독된 듯하다. 가계부채는 주요국 가운데 최고다. 지난달 국제금융협회 발표를 보면 주요국 가운데 한국만이 명목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비율(100.6%)이 100%를 넘었다. 미국과 중국, 일본, 유로존 등 주요 국가들은 60~80% 정도다. 증가속도도 빠르다. 저금리 환경 아래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뛰어드는 ‘영끌’ ‘빚투 열풍’도 무시할 수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 대출도 급증했다. GDP의110.1%에 달한다. 가계와 기업의 부채를 합한 민간신용은 통계작성 이래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가계부채는 1682조원, 기업부채는 2112조원이다. 폭증한 가계와 기업의 부채는 미래에 짐이다.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건 급증하는 대출이 투자를 위한 게 아니라 ‘버티기 위한 대출’이라는 점이다. 이는 투자와 소비를 어렵게 만들면서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지금은 저금리라는 특별한 상황을 향유하고 있다. 그러나 금리인상이 시작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가계와 기업 부채의 위험은 탄탄한 국가재정으로 보완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정부는 ‘큰 정부’를 말하며 확대재정 정책을 펼쳤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뒤에는 명분마저도 생겼다. 확대재정으로 국가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GDP 대비 국가부채는 올해 43.9%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에는 54.6%에 달하고 여기에 지방정부 부채까지 더하면 GDP 대비 60%에 이른다. 유럽국가들의 국가부채관리 수준까지 급등하는 것이다. 한번 상승탄력을 받는 부채를 단기간에 줄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속으로 달리던 트럭이 브레이크를 아무리 세게 밟아도 일정 거리를 간 뒤에나 멈출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을 풀어야 한다. 그래서 자영업자와 같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는 서민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데는 100% 공감한다. 그렇다고 방만하게 써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안갯속 신기루를 향해 10만발의 화살을 쏘아 제갈량에게 헌납했던 조조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초선차전·草船借箭). 신기루를 향해 재정을 퍼부어서는 안 된다.
정부도 국가부채의 급증이 문제라는 알고 있다. 그래서 재정준칙을 도입해 계획적으로 부채관리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운만 띄워놓고 시늉만 냈을 뿐이다. 재정준칙의 적용을 2025년 뒤로 미뤄놓은 것이다. 이미 부채가 늘어날 대로 늘어난 뒤에 관리에 나서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그 일은 다음 정부의 몫으로 남는다.
정부를 감시할 국회는 의무를 해태하고 있다. 국회는 정부가 낸 예산안을 심의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정부는 올해(512조원)보다 8.5% 늘어난 내년도 예산안(555조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쓸데없는 예산은 줄여야 한다. 돈은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오히려 558조원으로 늘렸다. 상당수 지역민원 해소용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사업이다. 여기에는 여당·야당이 한통속이다. 그러면서 국회는 6년 만에 법정시한 내에 예산안을 처리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이뿐인가. 대형 국책사업에 대해 사전 검증작업을 벌이는 예비타당성조사도 흔들리고 있다. 예타조사는 낭비를 줄이려는 목적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각종 예외 사유가 만들어지면서 ‘찢어진 그물망’이 됐다. SOC 사업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곳곳이 철도, 신도시 건설로 공사판이 될 것 같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 동안 추진했던 일이고, 이를 반면교사 삼아 SOC 사업을 줄이자고 했던 게 지금 정부다.
씨 과일은 먹지 않는다고 했다. 큰 과일은 다 먹지 않고 남긴다(碩果不食·석과불식). 자기 욕심을 버리고 자손이 복을 받도록 염려하는 뜻에서다. 큰 파도가 지나고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짐을 지우는 일은 막아야 한다. 현실이 아무리 곤핍하다 해도 앞날을 생각해야 할 것 아닌가.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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