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업 민원 해결하는 게 규제 완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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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사설]기업 민원 해결하는 게 규제 완화인가

by eKHonomy 2014. 3. 27.

정부가 어제 규제개혁 점검회의 후속조치 계획을 발표했다. 대통령 주재의 점검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 만이다. 당시 건의된 과제 52건 중 41건을 수용해 사안별로 상반기 혹은 연내에 마무리하고, 11건은 추가 검토·수용 곤란으로 분류했다. ‘뷔페는 5㎞ 이내 제과점 빵만 구입한다’는 식의 황당한 규제를 없애는 것은 환영한다. 하지만 폐지 시 사회적 후폭풍이 명확한 사안까지 규제 완화 목록에 포함시켜 벼락치기식으로 무장해제하겠다는 것은 지극히 유감스럽다.

무엇보다 학교 주변이라 하더라도 유해시설이 없는 호텔 설립을 허용하며 이를 위해 법·제도를 정비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일주일 전 회의에서 민원인이 학교 주변에 호텔을 짓는 게 파렴치한 짓이냐며 울분을 토했던 사안이다. 민원인은 서울 양평동에서 관광호텔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법규정과 지자체의 비협조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서울 용산구 성심여중 앞의 화상경마장, 서울 송현동 풍문여고 앞의 대한항공 7성급 호텔 건립 추진과도 맥이 닿아 있다. 특히 대한항공은 2012년 대법원이 학습권 보호를 이유로 설립 불가 판정을 내렸음에도 박근혜 정부를 들쑤셔 학교정화위 심의 없이 호텔 설립이 가능한 관광진흥법 개정안까지 만들도록 했다. 학교 인근 경마장, 호텔 건립 제한은 규제가 아닌 학습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자녀를 둔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터다. 더구나 한진그룹은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다. 부동산을 팔아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야 할 기업이 호텔을 짓겠다는 발상 자체가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최소한의 환경규제의 필요성 (출처 :경향DB)


여수산업단지 내 녹지규제 완화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 여천NCC 등 기업 7곳은 산단 내 녹지를 공장 용지로 바꾸려 하는데 대체녹지 조성과 개발차익 환수 등 이중규제로 힘들다며 문제만 해결되면 5조원대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산단 내 녹지는 오염 사고 시 방호벽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쉬 풀어줄 사안은 아니다. 완화하더라도 석유화학산업이 침체된 상황에서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규제는 흑백논리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편익보다 비용이 큰 규제는 마땅히 줄여야 하지만, 떠밀려가듯 진행되는 방식은 옳지 않다. 최소한 의사결정의 투명성, 객관성, 책임성이 담보돼야 한다. “규제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기업), “규제는 죄악이다”(대통령)라는 인식 아래 뚝딱 해법이 나오는 방식은 부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음 정권에서 또다시 규제 문제를 손봐야 하는 광경을 떠올려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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