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다시 환율전쟁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글로벌 ‘빅 파워’ 간의 돈 전쟁에 한국은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고약한 상황이 됐다. 최근의 글로벌 경제 흐름은 ‘나부터 살고 보자’는 말 외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금융위기 뒤 1차 환율전쟁의 파고를 헤치고 나온 미국 중앙은행은 엊그제 금리 인상으로 인한 글로벌 금융시장 격변을 준비하라고 예고했다. 미국 경제를 위해 풀려나간 달러 회수를 더 늦출 수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신흥국에서 발생할 자본 이탈 등은 알아서 대응하라’는 뜻도 내포돼 있다. 반면 유럽중앙은행은 “비전통적 조처들을 내놓을 것”이라며 추가 양적완화를 시사했다. 일본이 추가 양적완화를 내놓기 무섭게 나온 대책이다. 일본과 유럽의 목표는 비슷하다.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춰 수출 경쟁력을 높여 경기를 살리겠다는 뜻이다.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늪에서 빠져나오는 게 우선이라는 인식이다. 엔화와 유로화는 추가 양적완화 발표 뒤 급락하고 있다.
1차 환율전쟁에서 원화 약세정책으로 위기를 벗어난 한국이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과 유럽의 부양책으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그만큼 상실되는 상황을 맞기 때문이다. 정부는 잇단 양적완화에 ‘원·엔 동조화’ 등을 거론하며 맞서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지만 선진국들의 절상 압력이 예상돼 쉽지 않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달러 강세는 전체 수출에 도움이 되겠지만 자본 이탈이라는 부작용도 있어 꼭 좋은 상황만은 아니다. 여기에 양적완화에 맞서는 전통 기법인 기준금리 인하 카드 역시 가계부채 문제 때문에 섣불리 꺼내기 어렵다.
일본의 추가적인 양적완화 조치로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3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모니터에 영국 파운드, 일본 엔, 미 달러 환율 등이 표시돼 있다. (출처 : 경향DB)
경기침체로 성장률 전망치가 당초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선택 폭을 좁게 만든다. 정부는 내년 성장률을 4.0%로 예상하고 살림살이를 짰지만 국내외 기관에서는 3% 중후반으로 보는 상황이다. 성장률이 낮아지면 세수가 줄게 된다. 세수 부족 상태에서 확장재정까지 겹치면 재정적자가 커지게 된다. 이를 감안하면 현실 눈높이에 맞춰 살림살이를 다시 짤 필요가 있어 보인다. 되풀이 얘기하지만 통화전쟁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환율의 미세조정으로 끝나는 사안이 아니다. 경상흑자 폭을 관리해 원화가치 상승 압력을 누그러뜨리고, 투기자본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 정부 일각에서 그간의 단기부양 우선 정책에서 벗어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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