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일본 제조업의 추락은 조롱거리였다. 실제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빠져 후발업체의 추격에 갈팡질팡 길을 잃으면서 텃밭인 조선·철강·중공업은 물론이고 일본의 자존심이라던 전자마저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져 부활의 찬가를 부르고 있다. 그사이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한국 제조업은 추락하고 있다. 반면교사를 곁에 두고도 자만의 함정에 빠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제조업체 12만여곳의 2014년 경영을 분석한 결과 매출액이 1년 전에 비해 1.6% 감소하는 등 빈사상태였다. 매출 뒷걸음은 외환·금융위기 때도 없었던 일이다. 영업이익률도 5~6%대에서 4%대로 떨어졌다. 나아질 기미도 없다. 올들어서도 주요 업종의 수출이 급락하면서 매출이 1분기 마이너스 5.7%, 2분기 마이너스 6.3%로 더 떨어졌다. 조선·중공업·철강 등의 불황에 삼성전자의 휴대폰과 현대차의 자동차 수출 부진이 겹친데 따른 결과다. 최대 시장인 중국의 경기 하강, 세계 교역량 감소, 일본의 엔저공세, 중국업체의 부상 등 달라진 경영환경이 배경이다. 이는 정부 주도의 성장·선진기술 모방으로 가능했던 과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양상이다.
제조업 재고율지수, 수출 증가율 추이_경향DB
이런 측면에서 일본 제조업의 반전은 흥미롭다. 아베 총리의 엔저가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더 유심히 봐야 할 대목은 엔고 당시의 뼈를 깎는 체질 개선이다. 도요타로 상징되는 자동차업체는 중국시장의 부진에도 시장 다각화와 전문분야 집중으로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경신 중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7873억엔의 적자를 냈던 히타치는 TV, 디스플레이를 내던지고 철도 같은 인프라로 사업을 재편하면서 우량기업으로 거듭났다. 최고경영자의 결단력, 구성원들의 희생이 밑거름이 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 제조업의 30%는 돈 벌어 이자도 못 내고 있는 형편이다. 기술이나 경영 혁신은커녕 경영환경이 나아지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은행 돈으로 버티는 게 능사처럼 되어 있다. 형편이 나은 기업들은 불투명성을 들어 금고에 돈을 쌓아둔 채 머뭇거리면서 정작 땅 짚고 헤엄 치는 업종에만 사활을 걸고 있다. 정부는 미래 먹거리보다는 재임 중 성과를 위해 창조경제니 청년펀드니 하면서 기업들에 정치적 사업을 강요하고 있다. 이래서야 경쟁력이 생길 리 없다. 제조업은 국가경제의 기둥이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퇴보와 전진이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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