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사태가 일파만파다. 늑장 공시 논란으로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조건부 승인을 받고 판매한 신약은 안전성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신약 수출로 대박을 터트리면서 한국 제약계의 미래로 치켜세워졌던 회사인 점을 떠올리면 기막힌 결과들이다.
늑장 공시 논란은 내부자 거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한미약품은 지난달 29일 시장 종료 뒤 미국 제약사와 1조원 규모의 항암제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다. 이런 호재로 주가는 이튿날 5% 오른 급등세로 출발했다. 하지만 개장 30분도 안돼 독일 제약사에서 폐암치료제 올무티닙의 기술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을 공시했다. 올무티닙은 중국에도 수출된 한미약품의 대표적 신약기술이다. 주가는 즉각 급락했다.
이관순 한미약품 대표이사(왼쪽)가 2일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에서 열린 신약 ‘올무티닙’ 관련 ‘지연 공시’ 의혹과 임상연구 부작용 사망 사례 등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약품은 “독일 회사에서 29일 오후 계약해지 통보를 해와 30일 오전에 거래소에 관련 사항을 설명한 뒤 공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장기업의 공시는 거래소 승인 없이 기업이 알아서 하는 자율 시스템인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힘든 해명이다. 더구나 한미약품은 29일 호재 때는 거래소와 협의 없이 공시했다. 결국 호재만 믿고 한미약품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순식간에 원금의 최대 4분의 1을 날려야 했다. 당시 개인들은 손해를 보고 기관은 주가가 떨어지는 쪽에 베팅하는 공매도로 짭짤한 재미를 봤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이득을 안겨주기 위해 늑장 공시를 했을 것이라는 세간의 추론은 이상하지 않다. 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올무티닙의 부작용 사망이 잇따르는 상황에서도 판매가 계속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한미약품은 지난 5월 올무티닙을 개발 임상단계에서 식약처의 조건부 승인을 받아 시판했다. 하지만 최근 부작용으로 2명이 사망했다. 예기치 않은 부작용인 만큼 식약처는 지체 없이 판매중단 조치를 취하는 게 옳다.
한미약품 사태의 교훈은 명확하다. 신약개발은 중요하지만 도덕적 신뢰에 우선할 수 없다. 무엇보다 임성기 회장이 직접 관련 사안을 설명해야 한다. 대박 신화의 과대포장은 안된다. 이관순 한미약품 대표는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기술수출 이후 개발 포기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기술수출 발표 때는 대박날 것처럼 얘기하다 문제가 생기면 별일 아닌 듯 말을 바꾸는 것은 책임 있는 기업인의 자세가 아니다. 애초 신약 성공의 가시밭길을 설명했어야 했다. 제약업이 한국의 미래산업 중 하나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신약개발의 어려움도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태도로는 곤란하다. 도덕성을 의심받는 기업에 미래가 있을 리 없다.
'온라인 경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절세와 천재 (0) | 2016.10.04 |
---|---|
[사설]통신사만 배불린 단통법 손질해야 (0) | 2016.10.04 |
[경제와 세상]‘린치’를 멈추고 법치로 (0) | 2016.09.29 |
[기고]내부고발은 기회다 (0) | 2016.09.29 |
[시론]저출산, 가계부채 문제와 내년 예산안 (0) | 2016.09.27 |
댓글